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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7년 '부안 읍성'.. 1915년 지적도 찾아보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부안 읍성이 1457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1487년 완성되었으며, 성곽 규모는 돌로 쌓았으며 둘레 16,458척(5.5km), 높이 15척(6m), 안에 우물이 16개로 기록되어 있다. 굳이 비교한다면 전주성의 2~3배 규모이며 아마도 부안진扶安鎭이 있어서라고 추정해본다.

국가기록원에 의하면, "일제는 1905년부터 토지조사를 위한 준비 작업을 하였으며, 1910년부터 1918년까지 8년여에 걸쳐 총 2천 40여만 엔의 경비로 전국의 모든 택지와 경지에 대해 필지별로 측량을 하고 소유자와 지가 및 지위등급을 조사한 사업으로 토지·임야조사부, 지적·임야원도 등이 작성되었다"는 것을 소개하고 있다.

부안 읍성도 일제가 1915년 완성한 부령면 지적도에 동문, 서문, 남문을 중심으로 성城이란 표기가 선명하게 나와 있다.(아래 사진 참고)

부안군 도시과장, 문화재팀장을 역임한 최영구 씨는 부안 읍성에 대한 애착이 많았는데 국가기록원에 이러한 기록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지인들과 흥미롭게 출력물을 검토했다.

부안현 관아와 부안 읍성은 1926년 일제에 의해 부풍관 훼철을 마지막으로 사라져버렸다. 뒤늦게 이러한 기록이 일제가 남긴 지적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서글픔이 있다.

부안 읍성 복원에 대한 찬반은 분명히 있지만..

사진-유경 위원장 제공
부안읍성 서문 부근이며, 지적도에 성城을 분명히 기록했다(자료:국가기록원)
부안읍성 남문 부근이며, 지적도에 성城을 분명히 기록했다(자료:국가기록원)
부안읍성 동문 구영마을 부근이며, 지적도에 성城을 분명히 기록했다(자료:국가기록원)

조봉오 기자  ibuan1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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