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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에서 계화도까지(1).. 섬진강댐 수몰민 부안정착 이야기

1990년 7월 전라북도에서 펴낸 '섬진강에서 계화도까지'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섬진강댐 수몰민들의 가슴아픈 현실을 그나마 알게 해준 소중한 백서이다.

1961년 제1차 경제개발 5주년 계획은 섬진강 다목적댐 건설과 동진강 유역의 농업종합 개발사업을 추진하였는데, 이로 인해 임실군-정읍군 2개군 5개면 24리 1455ha가 수몰되었고 고향 산천을 지키고 있던 2786세대 19,851명이 졸지에 이주민이 되었다.

아무런 대책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했던 이주 대책은 주민들의 강한 저항을 받았다. 정부는 1965.3.11 제18차 경제각의에서 이주민들에게 계화도 간척농지를 분배하기로 결정하면서 이주대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이후 20년간 이주민을 위한 대책이 순차적으로 수립되었다고 한다.

1976년 이주민을 위한 주택단지 조성 계획은 창북, 조포, 계화, 언독, 돈지 등 5개 지구 매립지에 1684동의 조립식 주택을 건립할 예정으로 창북리 매립지(사진, 동영상)에 시험 주택 1동을 건립하였다.

매립지는 연약지반으로 침하가 발생하며 건물벽에 균열이 생겨 매립지는 택지로 부적하다고 판명되었다. 1977년 인근 육지로 위치를 변경하여 창북, 계화, 돈지 등 3개 지구에 택지를 조성하여 주택 건립은 1978년 12월 30일 준공을 보게 되었다.

당시 매립지에 건축된 시험 주택 1동은 현재도 창북-계화 진입로에 빈집으로 남아 있다. 임기태 전 의장은 "이곳은 계화도 간척지 역사를 증거하는 중요한 장소로 간척사 박물관 용도로 사용해도 좋을 듯하다"고 말했다.

한편 100년 전 계화도에 정착한 한말 유학자 간재 선생에게 배움을 청하기 위해 북간도~제주도 유생들이 찾아왔다. 조수간만을 잘못 알고 찾아온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창북리 신재일씨는 활인정活人亭을 세웠다는 최영성 교수의 주장도 있다.(계속) 출처:섬진강에서 계화도까지, 섬진강댐 수몰민 이주대책사

창북-계화 진입로 주택, 임기태 전 군의장

 

조봉오 기자  ibuan1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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