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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포만(곰소만) 어업에 대하여(1)줄포만(곰소만) 일대 어업기능과 살막금

구한말부터 1900년대까지 줄포만(곰소만) 어업, 어항, 염전에 대한 자료가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중요한 자료는 '곰소灣의 漁業과 漁村硏究, 김일기, 1988년, 서울대지리학과'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부안군 어업 자료는 김 교수의 논문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우선 살막금(箭幕) 마을에 대해 소개했다.

"위도면 살막금(箭幕) 마을은 300년 전에 황해도 해주 오씨들이 정착하여 농업과 어업을 영위하면서 생활해왔으나, 조선말에 어물거래가 증대되고 이곳에도 어전 어업이 도입되면서 살막금(箭幕) 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이어 “위도 지명에 살막금, 파장금, 벌금 등 '금' 字가 붙은 것은 해변을 가리키는 뜻이다. 扶安蝟島鎭地圖(年紀未詳)에 의하면 箭幕九味, 石九味, 深九味 등 '九味'가 붙은 地名이 많다. 이는 해안을 가리키는 뜻이라 한다. 따라서 '九味'가 '금'으로 변화한 것이다”

어떤 자료에 의하면 조기가 많이나와 황금어장에 빗대어 살막금, 파장금 등으로 지칭했다고 하는데 김교수 설명에 비해 설득력이 떨어진다.

곰소만에서 어획한 조기의 대부분은 法聖浦, 後浦, 江景 등지에서 출항한 出買船에 판매하거나 魚船을 이용해 法聖浦, 後浦 등지에 있는 客主에게 판매하였다.

「韓國水産誌」에 기록된 舊韓末 곰소만 일대 주요 어촌은 아래 표와 같다.

출처: '곰소灣의 漁業과 漁村硏究, 김일기, 1988년, 서울대지리학과'
출처: '곰소灣의 漁業과 漁村硏究, 김일기, 1988년, 서울대지리학과'

김 교수는 곰소만 일대를 (그림 34)와 같이 ▲漁港機能이 강한 村落 ▲漁業機能이 강한 村落 ▲鹽生產機能이 강한 村落 ▲漁業과 鹽生産 기능이 복합된 村落으로 구분하였다.

漁港機能이 강한 村落은 일찍부터 곰소灣 일대의 중심 취락으로 어선을 비롯한 미곡 운반선의 출입이 많아 각종 상품의 판매가 활발해 상업이 매우 발달하였다. 後浦와 茁浦를 비롯한 冬湖里가 이곳의 중심 漁港이었으며 法聖浦는 朝鮮中期 때부터 波市田을 중심으로 크게 발달하였다. 어항 구실을 하는 이들 浦口의 발달은 이곳 어민들의 漁獲物 판매와 漁撈資金 조달, 生活用品 구입 등에 큰 도움을 주어 곰소만 일대의 어업과 어촌 발달에 큰 영향을 주었다.

漁業機能이 강한 村落으로는 象浦, 下田, 觀仙佛, 旺浦, 鵲堂, 格浦 등으로 곰소灣 내측보다는 중앙이나 입구 쪽에 발달하였다. 특히 갯벌 퇴적이 적은 곰소만 북쪽 해안에 漁村이 발달한 것은 자연환경이 鹽業보다는 어업을 하기에 알맞기 때문이다. 이들 어촌의 어민들은 漁箭이나 柱木網 ‘꽁댕이 배(尾中船)’ 등을 이용하여 고기를 잡았으며 어획물은 바다에서 出買船에 팔거나 後浦, 茁浦, 法聖浦 등지로 운반 판매하였다.

鹽 생산 기능이 강한 촌락은 回龍, 渴馬, 檢堂, 高田, 新福, 柳川 등으로 대체로 갯벌이 넓게 발달해 있고 바닷물이 얕아 고기잡이에 부적당한 곳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朝鮮時代에는 鹽價가 대단히 비싸 일찍부터 煎熬鹽 생산에 유리한 이곳은 염업이 매우 발달하였다. 이곳에서 대량 생산된 소금은 조기를 굴비로 가공 판매하는데 큰 도움을 주어 이곳의 어업과 어촌 발달에 큰 영향을 주었다. 仙雲里, 安峴, 舊鎭 등은 어업과 염업이 복합된 촌락으로 주민 중 財力이 있는 사람은 어업을 경영하였다.

다음은 1900년대 줄포항의 중요성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출처: '곰소灣의 漁業과 漁村硏究, 김일기, 1988년, 서울대지리학과'

 

 

조봉오 기자  ibuan1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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