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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을 지키는 사람들(2).. 김슬지 도의원 의정활동

1919년 일본인 마스도미는 일본의 식민지배에 사죄하는 마음을 담아 오산학교(고창고보)를 세워 인재 양성을 도모했으며 현재는 명문 고창고등학교로 이어오고 있다.

특히 오산학교 경영이 어렵다는 소식을 들은 고창군민 5,500명이 35만 원을 모아 오산고보(고창고보)를 재탄생시켰다는 점이 놀라울 뿐이다.

일제강점기 부안군에는 중등교육기관이 없었다. 자녀 교육을 위해 군민들의 단합된 힘을 모은 적도 없었고, 춘헌 이영일 선생이 1937년 영명학원 설립을 했지만 일제에 의해 문을 닫았다.

부안군은 이영일 선생에 의해 1946년 부안중학교를 설립했다. 고창고보 개교 이후 27년을 훌쩍 넘긴 다음에야 중등교육기관이 설립되었다.

지역사회 학교와 자녀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는 명백한 근거 자료이다. 

2024년 부안군에는 전북특별자치도의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슬지 의원이 전북특별자치도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부안지역 교육재정 확보를 위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번 추경에서 김슬지 도의원이 부안 몫으로 확보한 예산은 전주시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제2, 제3의 김슬지 의원이 나와주면 부안 학생들은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김 의원이 확보한 주요 예산은 다음과 같다.

▷부안 창의예술미래교육센터 신축 관련 토지매입비 등 약 34억 ▷부안지역 교직원 연립관사 확충을 위한 리모델링비(부안고 (구)기숙사) 약 4억 ▷부안고 운동장 인조단지 조성 약 10억(부안군 대응투자 1억 확보) ▷닥나무 한지체험관 휴게실 설치비 약 9천만원 ▷부안 청소년 오케스트라 운영비 5천만원 ▷교수학습 여건개선비 약 6억 4천만원 ▷백산중 기숙사 증축비 약 13억원 ▷백산초, 줄포초 등 공립학교 교사 대수선비 약 2억원 ▷위도초 내진보강 등 시설안전 개선 사업 약 6억원이다.

김슬지 도의원
고창고보(출처:한국사데이터베이스, 동아일보 1925.09.03)

다음은 한국문화원연합회 지역N문화에 실린 고창고보 역사에 관한 내용이다.

"고창 오산학교를 세운 사람은 일본인 마스도미 야스자에몬(枡富 左衛門·1880~1934)이다. 마스도미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고, 교육자였다. 1909년 전라북도 김제에 정착한 마스도미는 1912년 무렵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오산리에 사과농장을 조성했다. 마스도미는 그해 하오산교회를 세우는 동시에 소학교 과정인 흥덕학당을 열었다. 마스도미는 일본의 한국 강제 병합과 식민지 지배에 사죄하는 마음으로 교회와 학교를 설립했다고 한다.

 

마스도미는 흥덕학교 졸업생들이 배출되기 시작하자, 1919년 중등교육 기관인 오산학교를 설립했다. 학교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은 사과농장의 수익으로 댔다. 오산학교는 1920년 오산고등보통학교로 정식 인가를 받았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후 공황의 여파로 재정난이 닥쳐왔고 오산고보는 폐교 위기에 몰렸다. 이때 고창군민들이 나섰다. 마스도미의 고베신학교 후배로서, 오산고보 교사였던 양태승(梁泰承)과 고창 군수와 유지들이 학교를 살릴 길을 열었다.

 

1922년 고등보통학교를 이어가기 위한 고창군민대회가 열렸다. 고창의 천석꾼 지주 13명이 각자 1만 원을 내기로 했다. 당시 1만 원이면 논 200마지기를 살 수 있었다. 고창군민들도 소유한 땅에 따라 일정 비율의 기금을 내기로 뜻을 모았다. 특히 지역유지 홍종철은 자신이 내기로 한 1만 원 외에 가난한 농민들의 몫으로 3,000명 분의 기금을 더 냈다. 마침내 고창군민 5,500명이 35만 원을 모아 오산고보를 잇는 고창고보가 탄생했다. 오산고보 학생들은 모두 고창고보로 흡수되었다. 학교의 위치만 고창군 북쪽 부안면에서 고창군 중심 고창읍 옛 읍성 자리로 옮겼다.

 

고창고보는 고창과 호남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학생들이 공부하러 오는 학교였다. 1924년 고창고보는 1회 졸업생 7명을 배출했는데, 고창 출신은 2명뿐이었고, 다른 졸업생은 서울 경기 경북 평북 평양에서 배우러 온 학생들이었다. 특히 고창고보는 설립 취지를 살려 다른 학교에서 반일·항일 문제로 제적당한 학생들을 받아들였다. 고창고보가 1937년 신사참배 거부로 강제 폐교 조치를 당한 전주 신흥학교 고등과 학생 전원을 받아들인 일화는 유명하다.

 

고창고보는 1925년 본관을 지었지만 늘어나는 학생을 수용하기 위해 신·증축을 계속했다. 고창고보는 1937년 서관 신축에 이어 1939년 강당(317㎡)을 준공했다. 함석지붕에 붉은 벽돌 건물인 강당은 전교생 행사와 체육 활동 공간이었다. 해방 이후 고창고보가 고창고등학교로 바뀌었고,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본관과 다른 건물들은 철거되고 새롭게 지어졌지만, 강당은 지어진 모습대로 남아 “북 오산, 남 고창” 소리를 듣던 학교의 상징물처럼 본관 옆에 서 있다. 고창고보 강당이 2005년 등록문화재 176호로 지정된 이유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출처:한국문화원연합회)

조봉오 기자  ibuan1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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