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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수 특강] 시원한 아이스크림도 외딴집서 택배로 받는 어르신

저는 지난 6월 11~14일(12일엔 규모 4.8의 지진 발생) 4일간 택배 기사로 일했습니다. 부안군 변산면과 하서면, 그리고 부안읍 라온아파트에 물건을 배달했습니다.

대한노인회 부안군지회 부안노인대학(학장 김성복)에서 강연할 내용을 체험하기 위해 하루 12시간 땀을 흘렸습니다. 어르신들과 자영업자 및 소상공인, 농어업인 등에게 참고가 될 만한 것들을 소개합니다.

저는 이 체험을 위해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이 규정한 ‘화물운송 종사자격’ 국가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1) 농어촌도 전자상거래 시대=“외딴집까지 오니라고 욕보셨네.” 변산면 바닷가 산골 독거노인이 시원한 ‘비타500’ 음료를 택배 기사인 내게 주신다. 외로워서일까. 내가 돌아서지 않도록 자꾸 말을 거신다. 어르신은 전자상거래로 아이스크림을 주문하셨다.

“와! 택배다!” 농촌 마을 초등생이 두 팔을 치켜들고 환호한다. 주문한 연필과 필통 세트의 ‘배달 예고’ 문자를 받고 대문 밖에서 기다렸단다.

“아저씨, 택배 너무~ 늦게~ 왔어요~.” 베트남 새댁이 베트남 식자재를 받으며 입이 튀어나왔다. 나는 “늦어서 죄송합니다. 베트남 꼬렌(베트남 파이팅 뜻)~”이라고 답했다. 새댁이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부안의 강남’인 읍내 라온아파트의 입주민들은 전자상거래를 많이 이용한다. 젊은 입주민들이 많아 반품을 요구하는 소비자의 권리도 현명하게 잘 챙긴다.

 

2) 농어촌의 소비행태도 급속 변화=농어촌에서 60대까지는 온라인 전자상거래에 이미 상당히 익숙해졌다. 70대 중반까지도 점차 전자상거래의 소비자로 바뀌고 있다. 70대 중반 이상 어르신들은 직접 전자상거래로 주문하기보다 도시에서 사는 자녀가 대신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 마을에 전자상거래를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 대신 주문해 주기도 한다. 이처럼 농어촌의 90대 어르신들까지도 전자상거래의 소비자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3) 아들보단 딸=전자상거래를 할 줄 모르는 80대 이상 어르신 댁에도 배달이 많다. 상품 대금은 도시에 사는 주문자가 내고 부안의 어르신이 집에서 배달받는 방식이다.

도시에 사는 자녀가 상품을 주문해 보내는 경우는 거의 딸이다. 아들이나 며느리가 주문해 보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나는 어르신들 댁에 배달하면서 알았다. 딸을 많이 둔 어르신 댁에는 택배 물량이 많다. 딸 없는 어르신 댁 앞은 썰렁하다.

 

“여보,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놓아드려야겠어요”라는 1990년대 경동보일러 광고가 떠올랐다. 도시에서 사는 아들과 며느리가 부모님 군것질거리라도 주문해 보내드리면 어떨까.

 

4) 값싸고, 편하고, 없는 것 없는 전자상거래=전자상거래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은 전자상거래가 값이 훨씬 싼 데다 배달해주는 것을 큰 장점으로 든다. ‘없는 것 없는 시장’을 집에서 마음껏 쇼핑한다. 도시의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보다 상품 선택의 폭이 월등히 넓다.

 

전자상거래는 먹거리 주문이 많다. 쌀, 콩, 고추장, 된장, 고구마, 감자, 돼지고기, 닭고기, 굴비, 꽃게, 전복, 젓갈, 망고, 스테비아 방울토마토, 참외, 사과, 소주, 맥주, 음료수, 생수 등 끝없다. 뜻밖에 망고가 과일 주문 중 1위였다.

 

의류 주문은 겉옷부터 양말까지 많고도 많다. 구두, 운동화, 장화, 슬리퍼 등 신발도 주문한다. 여성들은 화장품, 패션 고무줄, 뜨개질 용품, 온갖 잡화 등을 주문한다. 어린이들은 학용품과 장난감, 인형, 컴퓨터 게임용품 등을 주문한다. 어르신들은 건강식품과 성인용 기저귀 등도 주문한다.

 

가격을 비교하면 의류나 잡화, 식품, 과일, 식자재 등의 전자상거래가 전통적 매장보다 값싸다고 한다. 농기구, 농자재, 비료, 퇴비(거름), 낚시용품, 각종 어구, 애완동물의 영양식과 장난감 등도 전자상거래가 더 값싸다고 한다.

 

면 지역 음식점과 카페 등에서는 대용량 식자재 주문이 많다. 펜션과 모텔 등 숙박업소들도 전자상거래를 많이 이용한다. 외국에서 시집온 이주여성들과 외국인 노동자 합숙소에서는 외국 식자재도 주문한다.

 

반품할 때의 차이는 매우 크다. 수박이나 참외를 반품한다고 하자. 거리의 1t 트럭 행상에서 샀다면 그 행상이 다시 오기를 보초병처럼 기다려야 한다. 식자재마트나 소매점에서 샀다면 수박이나 참외를 들고 찾아가야 한다. 전자상거래로 샀다면 온라인으로 반품을 요청하고 문밖에 내놓으면 된다. 택배 기사가 ‘반품 송장(送狀)’을 보고 와서 문밖 수박이나 참외를 회수해 간다. 이때 택배 기사는 택배회사로부터 ‘반품 집하(集荷)’ 수당을 받는다.

 

부안엔 쿠팡 이용자가 많다. 최근엔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 테무 이용자도 보이지만, ‘구매 전환율’(앱 방문자 수 대비 물건 구매자 수의 비율)은 높지 않은 듯하다.

 

5) “택배, 택배~! 단속 아냐~!”=농업과 어업(수산업) 일터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내가 나타나면 불법체류자들은 긴장했다. 나를 단속 나온 형사로 오인했다. 나는 얼른 “택배, 택배~! 단속 아냐~! 안 잡아가~!”라고 말하면서 팔다리를 과장되게 흔드는 몸짓 언어로 그들을 안심시켰다.

 

6) 농로를 달리는 택배 트럭들=10년 전 내가 귀농했을 때다. 부안에는 1t 트럭에 과일이나 채소, 또는 생선을 싣고 다니며 파는 행상들이 많았다. 행상들의 마이크 방송을 수없이 들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식자재마트들이 여기저기 생겼고 ‘트럭 행상’들은 경쟁력을 잃었다.

부안은 백화점이나 대형마트가 없다. 식자재마트들의 경쟁이 치열한 와중에 전자상거래가 위협적으로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이는 재래시장과 도소매점, 각종 대리점 등의 영업은 물론 상가 건물 등 부동산 경기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는 4일간 택배를 하면서 부안의 국도와 지방도로는 물론 마을 도로와 시멘트 포장 농로, 심지어 비포장길에서도 다른 택배 트럭들과 자주 마주쳤다. 세상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전자상거래, 시대의 흐름이다.

<김인수 전 경향신문 편집부장>

#대한노인회부안군지회 #은빛방송단 #부안노인대학 #택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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