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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은 항일 학생운동 성지1923년 줄포여자학우회와 1928년 광주여고보 소녀회 비교

[1920년대 부안군 보통학교 학생들은 일제 식민지 교육에 항거하며 학생독립운동을 했던 역사적 사실들이 부안인터넷신문을 통해 속속 밝혀지고 있다. 특히 1923년 줄포보통학교 여학생들은 少女解放運動을 펼쳤다. 줄포보통학교 여학생들의 선구자적인 시대적 행동을 기획취재 보도한다.  1) 10월1일 '少女의 날' 제정, 2) 茁浦女子學友會 출범 3) 부안 少女解放運動 4) 부안 女性解放運動 5) 부안은 항일 학생운동 성지 /편집자]

 

1926년 주산보통학교 학생들은 일제 식민지 교육에 항거하는 동맹휴교를 3회에 걸쳐 단행했다. 학부모들의 막강한 영향력으로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학교장은 학적부에 징계 사실을 기록했다.

동맹휴교에 36명이 참가했으나 졸업은 26명이 했다. 주모자에 해당하는 학생이나 강성 소유자 학생들은 자퇴를 하거나 다른 학교에서 학업을 마쳤다. 자퇴를 한 학생들에게 명예졸업장이 수여되어야 한다.

주산보통학교 동맹휴교 사실은 100만에 부안인터넷신문에 의해 최초 공개되었으며, 전북도민일보, 더팩트, 프레시안(4회 연속)을 통해 심층 보도된 바 있다.

1928년 6월 8일 백산보통학교 보습과 학생들의 동맹휴교는 중외일보(1928.06.15)에 의해 알려졌으며, 지역 사회단체들의 토의 안건에 학생동맹휴교이 거론되었으나 임석 경관에 의해 토의 중단되었다는 중외일보(1928.07.05) 보도가 있었다.

부안군이 항일 학생운동의 성지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줄포에 있다.

1919년 4월 줄포보통학교 학생들의 만세운동이 있었으며, 1923년 줄포보통학교 여학생들이 少女解放運動을 목적으로 茁浦女子學友會를 설립하여 활동했다.

茁浦女子學友會(회원 70여명)는 10월 1일을 소녀의 날로 제정했으며, 1924년까지 학예회를 자체적으로 개최하는 소녀해방운동을 펼쳤다.

결국, 일제는 지도교사를 추방하자 여학생들은 동맹휴교를 단행했다. 이러한 결과는 여학생들의 학업중단이 발생했다.

1923년 茁浦女子學友會 임원으로 선출된 "부회장 辛甲寅, 서무부위원 金順南, 李福成, 체육부위원 李玉姸, 金堯順, 지육부위원 宋壽南, 서기 辛順嬅, 李順禮"는 졸업을 하지 못했다. 

줄포에서 발생한 여성해방운동은 시대적으로 앞선 활동이었지만 좁은 지역사회에서 조용히 묻혀버렸다.

일제강점기 부안군은 항일 학생운동 성지이다. 특히 100년전 줄포보통학교 여학생들의 少女解放運動은 재조명되어야 한다.

한편, 1928년 광주여고보 학생들의 소녀회 활동과 1923년 줄포보통학교 여학생들의 소녀해방운동은 여성단체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과제이다.

1925년 줄포보통학교 여학생, 훈도 宗ミカ, 임정래 선생

 

 

 

 

 

 

조봉오 기자  ibuan1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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