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행사 모임 인물 인물동정
한국 시 문학사의 거목 신석정 선생님 바로알기(上)2018.03.17 석정문학관, 강사: 기세원 시인

(편집자 주: 석정문학관 연간 사업계획 '석정이야기 들려주기' 에 기세원 시인(부안농협 백산지점장)이 2018.3.17 특강한 내용을 3회로 나눠 소개합니다.)

<강사: 시인 기세원(奇世源)>

시인 기세원

- 1964년생. 전북 부안군 하서면 출생.
- 상서초등학교.하서중학교.부안고등학교.농협대학교 졸업.
- 2010년 월간 조선문학에 시 당선으로 시인등단.
- 활동 : 조선문학문인회. 형상21시문학회 .부안문인협회, 
전북문인협회회원.
- 수상 : 
2010조선문학 신인상,
2014년 부안예술문화상 수상,
2017년 조선시문학상 수상
- 시집 : 『바다는 나를 위해 잔잔해주지 않는다』

Ⅰ.신석정 시인 주요 연보

1907년 7월7일(음)전북 부안읍 동중리 303-2번지에서 부친 신기온 모친 이윤옥 사이에서 차남으로 출생
1917년(11세) 부안 보통학교 2학년으로 입학

1923년(17세) 5월 두 살 연하의 만경 규수 李姓女와 혼인(후에 小汀으로 개명)

1924년(18세) 11월 24일자 <조선일보>에 첫 작품 <기우는 해>를 '蘇筑'이라는 필명으로 발표, 이후 조선, 동아 양 지에 다 수의 작품을 발표.

1930년(25세) 3월 마명 정우홍의 소개로 중앙불교전문강원, 석정 박한영 스님 하에서 불전을 연구.

1931년(26세) 2월 6일 (음)모친 이윤옥 작고, 동년 8월 안서의 소개로 <촛불>의 서도작 <임께서 부러시면>을 <東光>지에 발표, 11월 김기림의 만류에도 향리 부안으로 낙향

1932년(27세) 낙향 전후 3년여 동안 10여 두락의 소작농에서 얻은 벼로 선은동 560번지에 가까스로 집을 마련, 이곳을 '청구원'이라 이름을 짓고 본격적이 詩作 생활 始作

1939년(34세) 11월, 첫 시집 <촛불>을 인문평론새에서 간행

1940년(35세)  7월 <차라리 한 그루 푸른대로>가 <문장>지에서 검열 삭제

1946년(41세)  2월 8~9일 양일간 '조선문학가 동맹'이 서울 종로 기독교 청년회관에서 개최하는 '전국문학자 대회'에 김기림과 함께 참석, 동년 3월 이후 1950년 6월까지 부안중학교 및 죽산중학교에서 교직생활

1947년(42세)  7월 제2시집 <슬큰 목가>를 부안 낭주문화사에서 간행

1952년(46세)  3월 1일 ~ 53년 11월 30일까지 태백신문사 편집고문으로
                       있으면서 <土曜詩壇>을 주재
1954년(48세)  4월 이후 7년간 전주고등학교 교사생활, 동년 6월 <중국시집> (대역)을 정양사에서 간행

1955년(49세)  전북대학교와 영생대에서 '詩論'을 강의

1956년(50세)  11월 제3시집 <氷河>를 정음사에서 간행

1958년(52세)   4월 <名詩調 鑑賞> (이병기 공저)을 박영사에서 간행, 동년 6월 <梅窓詩集>(대역)을 낭주매창시집 간행위원회에서 간행, 동년 12월 전라북도문화상 수상

1961년(55세)  5월, 5.16직후 당시 '교원노조'를 지지하는 시 <단식의 노래> <서울일일신문>와 혁신계 신문 <민족일보>에 발표한 <다가온 춘궁> 등의 작품 때문에 당국에 연행, 취조를 받고 수일만에 풀려남

1964년(58세)  4월 1일 전주상업고등학교로 옮겨 1972년 8월 30일 정년시까지 재직

1965년(59세)  6월 '전주시 문화장' 수상

1967년(61세)  5월 이후 2년간 제6대 한국예총 전북지부장 역임, 동년 10월 제4시집 <산의 序曲>을 기림출판사에서 간행

1969년(63세)  8월 23~29일까지 광주지역 언론인과 문인협회의 초청으로 광주 Y살롱에서 시화전 개최

1970년(64세)  4월 13~18일 한국시인협회 박목월 회장의 초청으로 덕수궁 국립공보관 화랑에서 개인시화전 개최. 11월 30일 제 5시집<대바람 소리>를 한국시인협회에서 간행

1972년(66세)  9월 1일 '문화포장' 수장,  9월 5일 전주상업고등학교 정년퇴임

1973년(67세) 10월 20일 제5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수상, 10월 21일 '전북도문화상' 심사 도중 졸도

1974년(68세)  7월 6일 0시 20분 영면, 전북 임실군 관촌면 신월리에 안장, 7월에 유고수필집 <난초잎에 어둠이 내리면> 지식산업사)이 나옴

1976년 7월 전주 덕진공원에 '신석정 시비'가 건립됨
1991년 8월 부안 변산 해창에 '석정 시비'가 건립됨
2000년 3월 20일 부안군 행안면 서옥 마을 선양하 부인 곁으로 이장
2004년 4월 25일 묘소 앞에 시비가 건립됨
2004년 9월 3일 ~ 9일, '30주기 추모문학제' 개최
2007년 9월 14일 ~ 20일, '석정시인탄생100주년기념문학제' 개최
2009년 4월 <신석정 전집>(국학자료원) 간행
2011년 10월 전북 부안에서 석정문학관 건립
2012년 10월 '석정문학관'개관 1주년 기념문학제 개최
2013년 10월 25 ~ 26일 석정문학관 개관 2주년 기념식 석정문학제 개최
2014년 7월 11일 신석정기념사업회 창립
2014년 10월 25 ~ 26일 석정문학제 및 제1회 신석정문학상 시상
2017년 9월1일 부안댐 문학동산에 『임께서 부르시면』 시비 건립

Ⅱ.신석정 선생님의 좌우명

신석정 선생님의 좌우명은 『지재고산유수(志在高山流水)』이다. 한자를 직역하면 ‘뜻을 높은 산과 흐르는 물에 둔다’는 뜻이다.

속물이 되기 쉬운 것도 인간이고 지조를 헌신짝처럼 버리기 쉬운 것도 인간이므로 뜻을 항상 저 높은 산과 흐르는 물에 두어 정신의 기둥인 지조를 지킬수 있어야 한다고 믿고 좌우명으로 삼았다.

생전에 시인이 말하길 ‘세상이 모두 흐렸으되 맑은 것은 나뿐이요, 사람들이 모두 취했으나 취하지 않은 것은 나뿐이다’는 굴원의 어부사 내용처럼 굴원의 경지에 도달하지는 못할지언정 실낱같이 남아 있는 지조나마 지키고 살자니 항상 마음을 저 고산과 유수에 둘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다.

<굴원>
굴원(屈原, BC 343년~BC 277)은 중국 전국시대 정치가이자 시인이다. 초(楚)나라 회왕(懷王)의 좌도(左道 : 좌상, 좌의정 쯤 되려나)를 맡아 내정과 외교에서 활약하였으나, 정적(政敵)들의 모함을 받아 국왕 곁에서 멀어지고, 권력을 잃게 되었다.

 그는 제(齊)나라와 동맹하여 강국인 진(秦)나라에 대항해야 한다는 합종파(合縱派)였으나, 연형파(連衡派)인 진나라의 장의(張儀)와 내통한 정적과 왕의 애첩(愛妾)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어리석은 왕은 제나라와 외교를 끊고 진나라에 기만당하였으며, 출병(出兵)하여서도 고전할 따름이었다. 진나라와의 화평조건에 따라 자진하여 초나라의 인질이 된 장의마저 석방하였다.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 있던 굴원은 귀국하여 장의를 죽여야 한다고 진언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고 왕이 진나라를 방문하는 것도 반대하였으나 역시 헛일이었다. 

왕이 진나라에서 객사(客死)하자, 장남 경양왕(頃襄王)이 즉위하고 막내인 자란(子蘭)이 영윤(令尹:재상)이 되었다. 자란은 아버지를 객사하게 한 장본인이었으므로, 굴원은 그를 비난하다가 또다시 모함을 받아 양자강 이남의 소택지로 추방되었다.

어부사(漁父詞) 내용을 간략하고 알기 쉽게 설명해 보기로 한다.

굴원이 이미 쫓겨나 강가에서 노닐고 못가를 거닐면서 시를 읊조릴 적에 안색이 초췌하고 몸이 수척해 있었다.

어부가 그를 보고는 이렇게 물었다.
 "그대는 삼려대부가 아닌가? 어인 까닭으로 여기까지 이르렀소?"

 굴원이 대답했다.
 "온 세상이 모두 혼탁한데 나만 홀로 깨끗하고, 뭇사람들이 모두 취해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으니, 그래서 쫓겨난 몸이 되었소."

 어부가 이에 말했다.
 "성인(聖人)은 사물에 얽매이거나 막히지 않고 능히 세상을 따라 옮기어 가느니! 세상 사람들이 모두 혼탁하면 함께 그 진흙을 휘젓고 흙탕물을 일으키면 되고, 뭇사람들이 모두 취해있으면 그 술지게미를 먹고 탁한 술을 마실 일이지, 무슨 까닭으로 깊은 생각과 고상한 행동으로 스스로 추방을 당하셨소?“

 굴원이 이에 대답하였다.
 "내 듣기로, 막 머리를 감은 자는 반드시 갓을 털어 쓰고, 막 목욕을 한 자는 반드시 옷을 털어 입는다 하였소이다. 어찌 깨끗한 몸에 더러운 것을 받겠소? 차라리 저 상강에 뛰어들어 강 물고기의 배속에서 장사를 지낼지언정 어찌 희디흰 순백으로 세속의 먼지를 뒤집어쓴단 말이오?"

 어부는 빙그레 웃고는 배의 노를 두드려 떠나가며 이에 노래를 불렀다.
 "창랑의 물 맑으면 내 갓 끈을 씻으리, 창랑의 물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
 그는 마침내 떠나가고 두 사람은 다시는 서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굴원은 이 작품 속의 시간 이후, 실제로 가슴에 돌을 품고 멱라강가에서 뛰어내려, 한 많은 생을 마감하였다

Ⅲ.시인이 되기까지

석정은 1907년 7월 7일 부안읍 동중리에서 태어났다.

석정의 본명은 석정(錫正)이었는데 생일이 칠석(七夕)날인데 착안하여, 자호를 석정(夕汀)이라 했다.

석정의 소년시절은 가난하고 고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평소 문학에 대한 동경이 남달랐던 석정은 집안의 나무와 화초들을 가꾸며 도연명이 되어보기도 하고 전원시인 졸로우(Threau)rk 되어보기도 하며, 러시아 문호 트르게네프의 『사냥꾼 일기』나 하이네의 『서정소곡』등을 읽으며 꿈을 키워나가던 중, 18살이 되던 해 전남 영광에 사는 진외가집 동생 남궁현이 석정의 집에 들렀다.

이 때 남궁현이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문학잡지인 『창조』 창간호를 가져왔는데, 특히 『창조는 시골에 묻혀 살던 석정에게는 황홀 그 자체였다고 한다.

다음날 둘은 계화도에 놀러가서 수평선에 지는 낙조의 장관을 보고 감동하였고, 이날 밤 집에 돌아와 시 한편을 써서 남궁현에게 보였더니, 무릎을 치며 감탄하며, 투고를 권했는데 이 작품이 석정의 첫 발표작으로 1924년 11월 24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기우는 해』 였다.
첫 시를 잠시 감상해 보기로 한다.

 

기우는 해

해는 기울고요-
울던 물새는 잠자코 있습니다.
탁탁 툭툭 흰 언덕에 가벼이
부닺치는
푸른 물결도 잔잔합니다.

해는 기울고요-
끝없는 바닷가에
해는 기울어집니다.
오! 내가 미술가美術家였다면
기우는 저 해를 어여쁘게 그릴 것을.

해는 기울고요-
밝힌 북새만을 남기고 갑니다.
다정한 친구끼리
이별하듯
말없이 시름없이
가버립니다.

훗날 석정선생님이 자서전에서 이 시의 매연 첫행의 ‘해는 기울고요-‘는 주요한의 『봄달잡이』의 한줄 ’달은 물을 건너가고요-‘가 하도 매력적이어서 채용했노라고 고백하고 있다.

시인 기세원 '석정 이야기 들려주기' 특강(2018.3.17 석정문학관) 사진-석정문학관 화면 캡쳐

 

 

 

부안인터넷신문  webmaster@buan114.com

<저작권자 © 부안인터넷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부안인터넷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