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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0년 전 부안을 찾아온 조선 마지막 성리학자 간재 선생

고려 말 부안에 성리학을 가져온 문정공 지포 김구 선생
100년 전 부안을 찾아온 조선 마지막 성리학자 간재 선생

부안은 물산이 넘치고 명승이 널리 알려져 많은 문객들이 다녀간 곳이다. 이들은 부안을 찾을 때마다 시를 남겼는데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시를 지역별로 분류할때 부안현이 제일 많다는 기록도 있다.

생거부안이라는 말은 저절로 나온 것이 아니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부안 김씨 중시조 문정공 지포 김구는 고려 말 대학자로 말년에 부안에 내려와 부안읍 선은동과 변산 지지포에서 후학들에게 성리학을 가르친 인물이다. 조선조에 들어와 유생들이 김구 선생을 배향한 도동 서원이 학당마루 뒤편에 있었지만 지금은 흔적만 남겨있다.

지포 김구 선생에 대한 학문을 높이 평가한 후세 사람은 조선 마지막 성리학자 간재 선생이다. 부안읍 선은동(석정문학관 뒤편)에 소재한 지포김구 유허비는 간재 선생이 친필로 남겼다.

정리하면 부안에 성리학을 가져온 분은 고려말 지포 김구 선생이고, 조선조 마지막 성리학을 부안에서 가르친 분은 간재 선생이다. 결국 부안은 성리학 본향이며 태동지 였음을 알 수 있다. 절대 간과해서는 안되는 중요한 문화사적 자료이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료를 꾸준히 정리하고 있는 학자는 부안 출신 이은혁 교수이다.

부안군 계화면 양지마을에 있는 계양사(간재 사당)를 외지인들이 찾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계화도에 있는 간재 사당 안내판은 입구에 있는 [간재 선생 유지 1.2km]에서 한참을 들어가면 [간재 선생 유지 400m]가 나온다. 그 다음부터는 간재 사당 안내 표지는 찾아볼 수 없다.

양지마을 안내판은 있어도 '계양사-간재 사당 유지'에 관한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는 계양사 입구에 있는 계화산 탐방로 안내판에 "현 위치"는 나와 있어도 간재 사당 표시는 없다.

계양사 입구에 가봐도 안내 표시는 없다. 안에 들어가야 이곳이 간재 사당 계양사 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부안 문화의 현주소이다.

100년 전 부안을 찾아와 10여 년 동안 3000여 명의 제자를 배출한 이곳은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만 수십채가 있었고 마을 이름도 학자촌으로 불렸다.

지포 김구 선생과 간재 선생이 부안에 씨앗을 뿌린 성리학, 지난 100년 동안 부안군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누구를 탓하리오.

순창군에 있는 훈몽재는 조선조 하서 김인후 선생이 강학을 했던 곳이다. 순창군은 2009년 이곳을 중건하여 매년 대학생 200여 명이 찾아와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간재 선생 제자들은 해방 후 정관계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했다. 대표적으로 정치인중에 김제출신 국회의원 6선 윤제술 부의장이 있다.

강암 선생 친척과 결혼한 윤제술 부의장은 6선을 하는 동안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활동하여 한국교육을 바르게 세운 분으로 유명하다.

계양사에서 동쪽 방향으로 멀리 보이는 지주중류백세청풍(砥柱中流百世淸風) 청풍대비가 세워져 있다. 2008년 간재 선생 추모회 화연회에서 세운 것으로 간재 사당 유지 찾기는 힘들지만 이것만은 우뚝 서있다.

2009년 순창군에서 중건한 훈몽재 전경(사진-순창군)
매년 대학생들이 순창 훈몽재를 찾아와 공부하고 있다.(사진-순창군청)
계양사 입구에 있는 계화산 탐방 안내도에도 간재 사당 표식은 없다.
양지 마을 입구에도 간재 사당 안내 표식은 없다.
계양사 입구에도 간재 사당 유지 안내 표시는 없다.
간재 추모회 화연회에서 2008년 세운 7m50cm 청풍대비

 

 

 

 

 

조봉오 시민 기자  bismark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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