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부안人신문 종합
1837년 김대건, 최양업 신학생 마카오 도착...2019년 5월 마카오 분수쇼

아름다운 홍콩, 향후 어떻게 전개 될지..

2019년 5월 홍콩-심천-마카오 3박 4일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부안과 직접 관련이 있는 마카오였다.

마카오는 우리나라 최초 신부 김대건 안드레아가 신학 공부를 했던 곳이고, 같이 공부했던 최양업 토마스가 1857년 부안군 변산면 불무동에 살고 있던 김대건 신부 가문 후손 교우촌을 방문한 이야기를 마카오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에 13, 14번째 편지를 보낸 곳이다.

김대건 안드레아는 1821년 8월 21일 충남 서산 솔뫼에서 아버지 김재준 이냐시오, 어머니 고우르술라에서 태어났다.

증조부 김진후 비오가 1814년 해미 감옥에서 순교하고, 1816년 을해박해에 종조부 김종한 안드레아가 대구 관덕정에서 처형당했으며, 1827년 정해박해가 일어나자 김대건 신부의 조부 김택현은 서울 청파동으로 피신했다가 경기도 용인 한덕골에서 잠시 있다가 이웃에 있는 골베 마실에 정착했다. 김대건 신부 아버지 김재준은 1839년 기해박해때 순교했다.

1831년 천주교 조선 교구가 설립되었으며 1836년 초에 모방 신부가 입국하여 전교활동을 하였다. 1836년 6월 모방 신부는 경기도 용인 은이 공소(회장 김재준 이냐시오)에서 김대건(지식)안드레아에게 세례 성사를 주고 신학생으로 선발했다.

1836년 12월 3일 김대건, 최방제-최양업(사촌) 3명은 유학길에 올랐다. 12월 28일 의주 변문과 압록강을 건너 중국땅에 도착했다. 중국은 유방제 신부(중국인)가 동행했다. 만주 봉천→, 산해관→북경→천진 제남→남경→항주, 복주→하문→1837년 6월 7일 마카오 도착(6개월 28일) 파리외방전교회 르그레조아 신부로부터 신학공부를 배우게 됨→1837년 8월 신학생들은 마닐라로 피신했다.

김 안드레아 1844년 12월 15일 부제품을 받음, 1845년 1월 15일 고국으로 돌아와 서울 돌우물골에 은신하며 신학생 선발과 조선 지도를 작성하여 다시 중국 상해로 돌아감, 1845년 8월 17일 중국 상해 김가항 성당에서 조선 3대 교구장 페레올고 주교장 집전으로 한국인으로 최초 사제 서품을 받았다.

1845년 8월 24일 상해 완당신학교 성당에서 첫 미사를 봉헌했다. 1845년 8월 31일 페레올 주교와 김대건 신부는 귀국길에 올라 1845년 9월 12일에 강경에 도착한다.

1846년 6월 5일 김대건 신부는 백령도 근처 순위도에서 체포되어 해주 감영에서 의금부로 이송되었다.

1846년 9월 16일 서울 새남터 형장에서 26세 나이로 순교함. 40여 일이 지난 후 신자들에 의해 경기 안성 미리내에서 장례를 지냄. 1901년 5월 21일 순교자 조사 위원회는 김 신부 유해를 용산 신학교 성당으로 모셔왔다.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1960년 7월 5일 혜화동 대신학교 성당 제대 아래에 모셔있다.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행사 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03위 성인으로 시성 되었다.(출처:한국천주교회사)

2019년 5월 마카오 성 바울 성당과 윈팰리스호텔 분수쇼..

1837년 김대건, 최양업 신부가 마카오 "성 바울 성당"에 도착했을때는 화재로 전면만 남아있었고 한다.

조봉오 시민 기자  bismark789

<저작권자 © 부안인터넷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조봉오 시민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