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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만평을 육성사업에 투자한 춘헌 이영일 선생

부안군, 고창군 발전 속도와 추진 방향 차이점은 교육 분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창고보(현 고창중학교, 고창고등학교)는 1919년 인가받아 일제 강점기 전국에서 모여든 인재들의 산실이 되었다. 최근에는 서울(2012년 개관, 60명 입소)과 전주(2013년 개관, 105명 입소)에 고창군 자녀들을 위한 장학숙을 마련했다.

고창군 군정 방향은 인재 양성을 최우선 사업으로 정하고 교육에 집중 투자하며 지역 발전을 꾀하고 있다.

부안군은 고창군에 비해 27년 늦은 1946년 부안중학교, 1949년 부안농림고등학교가 설립되었다. 

부안문화원이 고창문화원에 비해 24년 늦게 설립된 점도 지역 교육과 문화 사업은 같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안군은 자녀들을 위한 장학숙 마련과 문화 사업 추진을 위한 부안문화원 건립도 하지 못한 채 그동안 부안군정이 어디에 올인했는지 알 수 없는 암담한 현실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민선 7기 권익현 부안군수는 취임 후 조직개편을 통해 교육청소년과를 신설하는 등 노력하고 있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좀더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단체장이 초·중·고 교육 환경에 관심을 가져야 지역이 살아난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어버리는 순간 그 지자체는 30년 후 소멸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기왕에 귀농·귀촌에 투자하는 것이라면 교육 분야에도 같이 투자하여 한다.

1946년 40만평(현시가 수천억)에 달하는 토지를 희사하여 부안중, 부안농림고를 설립하여 부안군 중등교육에 첫 발걸음을 내디게 해준 춘헌 이영일 선생의 육영 사업을 후손들은 기억해야 한다.

부안군 보조금 사업을 뒷배로 급성장한 자산가중에 춘헌 이영일 선생을 본받아 육영사업을 위해 40만 평을 희사할 사업가 출현을 고대해 본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역대인물종합시스템에서 찾아본 춘헌(春軒) 이영일李永日 선생은 "1894년(고종 31)에 태어나 1953년까지 살았으며, 일제강점기 육영사업가이고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출신지는 전라북도 부안읍(扶安邑) 서외리(西外里)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춘헌 이영일 선생에 대한 흔적은 부안중학교에 해공 신익희 선생이 직접 쓴 춘헌 이영일 선생 송덕비가 있으며, 부안읍 성황산에는 선생이 직접 쓴 서림공원西林公園 비문이 있다.

또한 부안읍 성황산에 있는 춘헌 이영일 선생 송덕비가 있다. 다음은 내용 전문을 1987년 원문 그대로 인용한다.

복받았음이여! 이고장의 수려한 자연스러운 역사 유서깊은 전통을 이어가며 누려온 삶들 덕을 입음이여!

1953년 7월15일 아까운 6순을 일기로 타게하기까지 오직 평생을 육영사업만을 필생의 일로 삼아 혼신의 심혈을 기우린 선생의 보람안에서 우리와 우리들의 자자손손이 중견공민으로의 배움터를 가지게됨이라

선생은 일찌기 기본적인 민도의 향상과 실력배양이 00급선무임을 깨닫고 이고장에 중등교육기관이 없음을 안타까이 여기어 어렵고 어수선했던 8.15와 6.25를 전후하여 다음과 같이 큰일을폈다.

일제말기에 사재 약2만원(당시 2백석 추수분)으로 지금의 부안중학교 자리에 영명학원을 개설하여 불우한 농민의 자제를 교육교육 계도해 왔으나 간악한 일제의 탄압으로 그 구실을 다하지 못하다가 감격의 8.15광복 그이듬해인 1946년 전답 30만여평을 희사하여 부안중학교를 설립하였고 1949년 4만여평의 부지와 실습지를 쾌척하여 부안농림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이 모두가 선생의 숭고한 건학이념과 선생이 희사한 정재가 아니었던들 이룩될 수 없었음은 물론이거니와 지금도 우리들 눈에 선한 것은 선생께서 짚신을 신고 못주머니에 손수 망치와 자를 들고 교사 교구를 마련하던 소탈한 모습이다.

그뿐이랴 또 여성교육에 선구자적 역할을 다하였으니 1952년 거금 1천2백여만원 당시벼 8백석분의 쾌척으로 여성교육계발에 뜻을 같이한 고백주 김태수 선생 등 몇분 독지가와 재단법인 낭주학회를 설립하여 1953년 부안여자중학교가 개교되었으며 이법인을 발판으로 1961년 부안여자고등학교까지 설립할수있었으니 실로 선생의 유지가 이에까지 결실했음을 본다

참으로 선생은 이고장 중등교육기관의 창설자요 선각자이다.

선생이 가신지 어언 34년 흐르는 세월은 덧없이 우리들 기억마저 희미해지면서 선생의 공적이 흐려지매 이 어찌 애석한 일이라 아니하랴 이에 뒤늦게나마 이고장 교육계의 지보요 사회발전의 큰등불인 선생의 빛나는 공적을 후세에 길이 남기고자 백여명의 동문과 이뜻에 찬동한 몇분유지들이 지극한 정성을 모아 성황산기슭 서림공원에 송덕비를 세워 후진들에게 불멸의 귀감으로 삼고자 하는 바이다.

서기 일천구백팔십칠년시월

춘헌 이영일 선생송덕비 건립위원회위원일동 

고정 임명주쓰다

부안중학교 화단에 있는 춘헌 이영일 선생 송덕비, 해공 신익희 선생 글씨
부안읍 성황산에 있는 춘헌 이영일 선생 송덕비(1987년 건립)
춘헌 이영일 선생 고택(현 당산마루)

 

조봉오 시민 기자  bismark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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