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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은 왜 그랬을까?

1910년 일제의 강제합병으로 대한제국(조선)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특히 부안..

김형주 선생은 '종이글과 빗돌글'에서 소개한 부안읍성은 1457년부터 시작하여 30년 지난 1487년 완성되었다고 적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와 있는 부안 읍성 성곽 규모는 돌로 쌓았으며 둘레 16,458척, 높이 15척, 우물이 16개 있으며, 규모는 전주 읍성보다 3배가 커서 이렇게 넓은 큰 성을 왜 쌓았는지 알 수 없다고 전한다.

성곽 둘레가 5.5km인 부안읍성 흔적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 많은 돌덩어리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지만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는 당시 아전들이 집을 짓기 위해 파헤쳐서 가져갔다는 근거 없는 이야기만 남아 있다.

고창군은 고창 읍성(=모양성)과 읍면별 동헌과 향교가 남아 있다. 특히 고창군은 1976년부터 고창읍성 복원을 시작하여 33년을 투자했다.

1910년 일본이 부안현을 접수했다지만 지금의 부안감리교회 자리에 있었던 내아, 동헌, 진석루, 객사(부풍관), 사직단, 부안 읍성은 전부 사라져 버렸다. 

출처:김형주 선생 '종이글과 빗돌글'에서
출처:김형주 선생 '종이글과 빗돌글'에서

역사는 과거에서 현재로 넘어왔다.

1926년 객사(부풍관)에 부안군청이 들어섰다고 한다. 그렇다라도 부안읍성과 부속 건물은 흔적이라도 남아 있을 수 있었는데... 부안은 왜 그랬을까?

또한 부안읍 동문안 돌오리 당산은 국보급 문화재라고 민속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원형의 위치를 벗어나 있으며, 2003년 분실했다 되찾은 돌오리는 청자박물관 수장고에 1년 넘게 갇혀 있다.

부안문화원 건물이 없다는 것은 부안군민들로서는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우리들이 뽑아왔던 국회의원, 군수, 군의원들이 부안문화원 존재에 대해 한 번도 문제 의식을 가져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부안읍성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남의 일로 생각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매창 공원 조성을 위해 수백억이 투입되는 것은 용인해도 부안문화원을 신축해야 한다는 사안에 대해서 아무런 느낌이 없었던 곳이 생거부안이다.

부안군립도서관이 비좁아 학생들의 수요를 충족시키지 있으며 개인 사물함 사용은 신청하고 몇 달을 기다려야 가능한 일이다. 군민들이 내는 세금은 고스란히 자녀 교육을 위해 쓰여여야 하지만 정작 학생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도서관은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 또한 표를 받아 선출되는 정치인들의 책임이다.

부안읍성이 파헤쳐 지고 진석루가 넘어가고 동헌' 문짝이 뜯겨 나가도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선배들처럼 안이하게 생각하면 안된다. 이제부터라도 주변을 잘 챙겨서 후손들에게 쓸만한 것 하나라도 남겨놓아야 한다.

신운천 주변 사업에 들어가는 예산은 물경 695억 이라는 입간판이 당당히 서 있어 부안군 예산의 풍족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에너지테마거리 230억과 함께~~

 

조봉오 기자  ibuan1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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