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목련

어머니는 예쁜 누이를 단풍나무 숲에 묻고 비바람처럼 떨었다
목련꽃 피는 봄이면 한숨이 옷고름에 자줏빛으로 피어나고 비바람 몰아치는 날
목련꽃 봉오리 닮은 옷고름 풀어 던지고 그리던 누이에게 갔다
옷고름 태워드리고 찾은 고향집 대문 옆에서 하늘을 향하던 위성안테나는 불효자를 외면하듯 제 주인을 조상(弔喪)하듯 묘비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다

빈집 잔디 마당은 한 이레 깍지 않은 수염이다
엉겅퀴며, 토끼풀이며, 소루쟁이며, 질경이가 무성하게 올라오고
어머니 쭈글쭈글한 손바닥 같은 목련 잎은 체납된 고지서다
받을 곳이 막막했던 고지서는 얼마나 서러웠을까
발끝을 떠나 화단으로 마당으로 마루밑으로 뒤안으로 몰려다니며
지나온 세월을 추궁하고 독촉하며 나무란다

환하게 피어있는 목련꽃은 그늘을 가리키는 나침반이다
손녀가 세상에 태어난 기념으로 심은 목련은 청춘이 되어 꽃을 피우고
여름 내내 짙은 그늘을 선사했다
그 그늘도 슬품을 다 가리지 못할 것을
목련꽃이 북쪽 하늘을 향해 피운다는 것을 왜 그때는 몰랐을까

손녀가 장애를 안고 도회지로 황망히 떠나고 나서
어머니는 손녀의 그늘 안에서 소리 없이 울고 있었을 것이다
봄이 와도 항상 겨울 찬 곳에 눈길을 둔 목련꽃
어머니는 처연한 아픔과 함께 봄을 보냈을 것이다

외로이 등대처럼 집을 지켰을 해바라기는 여름내 애면글면 키워왔을 씨앗을
새들과 바람에 가을 서리에 보시하고 수척해진 머리에 하얀 버짐만 공허하다
바람은 낙엽을 이끌고 청국장 냄새며 장독대 정화수 올리던 기도 소리며
동지팥죽 뿌리는 경건한 발뒤꿈치 소리를 훑고 다닌다
뒤안이며 대발이며 눈길이 머물렀을 좁은 모퉁이를 돌아보면서
왜 느닷없이 보리밭 건너 삐비꽃 흐드러진 둑방이 그리웠을까

가을이 새들의 날갯짓을 재촉한다
계절은 그렇게 오고 가는 것이고 위성안테나는 다시 하늘을 향해야 한다
고개 숙인 위성안테나여! 깨어나라, 깨어나라
오늘 밤처럼 북두칠성은 묵묵한 목련나무 위로 별빛을 새길 것이고
봄이면 다시 생명선은 뻗어나갈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인생이 그러하였듯 나 또한
그 봄의 목련처럼 북쪽을 향해 피어난 음지의 찬 바람을 기억할 것이다

(기세원 부안농협백산지점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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