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 전북 부안군 백련초등학교 교장

현철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현철이가 4학년이었고, 내가 교감으로 근무하는 학교로 온 지 며칠 되지 않아서였다. 학생들을 지도하다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부장회의를 통해 또는 교육복지 프로그램을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었기 때문에, 현철이에 대한 소식은 금방 접할 수 있었다.

담임 선생님은 현철이가 분노조절 장애, 자폐증, 자살증후군 등이 있다고 얘기했으며, 화가 나면 다른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도 분노를 참지 못하고 폭발하여 주변에 있는 아이들도 현철이와 접촉하기를 거부하는 상황이었다. 현철이의 가정환경을 듣고 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철이는 아빠가 경상도에서 어부로 고기잡이를 나가면 2~3개월씩 집에 돌아오지 않았는데, 집에만 오면 현철이와 엄마를 학대하고 폭행을 일삼았다고 한다. 현철이가 어린 아기였을 때에는 엄마가 아빠의 폭력에 시달려 집을 나간 적도 있었으나 현철이 때문에 다시 돌아왔지만, 아빠의 폭력은 더욱 심해졌다.

아빠의 폭력이 심해질수록 엄마는 더 무기력하고 사고능력이 떨어지게 되었으며, 하는 수 없이 엄마는 현철이와 함께 아빠를 피해 도망치듯이 온 곳이 지금 현철이가 생활하는 곳이었다. 현철이 엄마는 자신이 불행한 것은 현철이를 낳아서 아빠와 진작에 헤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어릴 때부터 현철이에게 “넌 재수 없는 놈이야. 네가 태어나서 내가 불행해. 넌 쓰레기 같은 놈이야!”라고 말하며 아빠로부터 받았던 학대의 분풀이를 현철이에게 했다.

그렇게 자란 현철이는 자존감이 상할 대로 상했으며 말도 더듬었고, 무슨 일을 하다가도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난 쓰레기야. 나는 살아 있을 필요가 없는 재수 없는 놈이야.”라고 말하며 자학을 하고, 분을 참지 못하여 주변의 대상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곤 하였다.

교육복지사 선생님에게 현철이가 교육복지 대상 학생인지 확인을 해 보았더니, 자격이 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하지만, 담임 선생님 추천을 통해 교육복지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게 하였고, 교육청 및 지역의 정신건강증진과와 협조를 통해 아이에 대한 상담과 동시에 엄마에 대한 상담 및 치료를 병행하도록 하였다.

그나마 담임 선생님이 현철이를 잘 이해해주고, 따뜻하게 안아주어서 그럭 저럭 한 해를 마무리 할 수 있었고, 대신 나는 매일 아침 마다 현철이를 찾아가서 하이파이브를 하며, “너 참 잘생겼다. 넌 괜찮은 아이야.”라며 자존감을 높여주는 말로 관심을 보여주었다. 어쩌면 현철이는 세상이 자신에게 무관심하고, 외톨이가 되었다는 생각을 갖기 때문에 더 자폐증세와 분노조절장애를 갖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5학년으로 진급하면서 4학년 담임 선생님이 다른 지역으로 전근을 가시는 상황에 아이들을 특별히 많이 사랑해 주시는 선생님에게 담임을 맡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런데, 4학년 말에는 어느 정도 안정이 되는가 싶더니 5학년이 되어 모든 것이 새로운 환경이 되니, 다시 분노조절장애 증상과 자살증후군이 나타나게 되었다.

특히, 자신이 담임 선생님의 관심을 끌지 못하거나, 자신이 손들었을 때에 발표를 시키지 않으면, “나는 쓰레기야. 나는 살 가치도 없는 놈이야.”를 외치며 분노를 폭발하며, 심지어는 가위를 들고 자살하겠다고 담임 선생님과 주변 아이들을 놀라게 했다. 모두가 깜짝 놀랐고, 담임 선생님이 처음 겪은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나에게 와서 아이가 분노조절장애 증상을 보인다고 말하였다.

내가 갔을 때에는 이미 상황이 종료되었고, 잠잠해졌으나 여전히 분노의 눈빛은 그대로였다. 내가 다가가서 “현철아, 뭐 기분 나쁜 일이 있었어?”라고 물어봐도 대답도 안하고 씩씩거리기만 하였다.

현철이의 자살소동이 극을 달한 것은 학년 초 영어체험센터에 입소해서 원어민들과 영어수업을 할 때였다. 자신이 손을 들어도 원어민 교사가 발표기회를 여러 번 주지 않았다며 소리를 지르고, 바닥에 누워 뒹굴며 머리를 벽에 찧고 분노를 표출하면서, “나는 죽어야 해. 나는 살아 있을 필요가 없는 놈이야.”를 외치며 소동을 피웠다.

모든 선생님들과 그 반 아이들은 소리 없이 현철이의 행동을 지켜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고, 담임 선생님도 현철이를 제지하고 싶어도 체격도 크고, 힘도 센 현철이를 작은 체구의 여선생님이 말리지 못하고 가만히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자신을 보면서 한없는 무능함과 자괴감에 빠졌다.

제일 먼저는 담임 선생님의 자괴감을 치료하는 일이었고, 동시에 그 반 아이들이 받았을 충격을 치료하는 일이 동반되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서, “현철이가 한 행동을 말리지 못한 선생님에 대해 자책하지 마세요. 내가 있었어도 그 상황은 자제시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라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현철이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에 대한 책임을 선생님이 지려고 하지 마세요. 이것은 선생님 책임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 모두가 져야 할 책임입니다.” 라고 말하며 선생님을 안정시켰다.

그리고, 현철이는 복지실에 보내고 반 아이들을 찾아가서 많이 놀랬을 것을 위로하며, 현철이의 상태와 성장배경, 그리고 현철이와 엄마가 겪었던 아픔들을 솔직히 얘기했다. “그래서 현철이는 우리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아이고, 여러분은 현철이를 돕기 위해 5학년 200여명 중에서 특별히 선발된 아이들이며, 여러분의 담임 선생님도 많은 선생님 중에서 선발해서 현철이를 돕고 보살피도록 특별히 구성한 학급입니다.”라고 말하며 현철이를 이해해주고 도와서 함께 잘 생활해 줄 것을 부탁했다.

담임선생님이 나중에 와서는 아이들이 교감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들이 선발된 특별한 아이들이라는 말에 대단히 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남녀 모두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현철이를 도와서 어울리려고 노력한다고 말하였다.

나는 점심 식사 후에 운동장을 3~5바퀴 정도 도는 습관이 있다. 물론 건강을 위한 운동 때문이기도 하지만, 혹시라도 운동장에서 놀다가 다치는 아이나 싸우는 아이들이 있는지 관심을 가지며 생활지도를 겸하기 위한 것도 있다. 따스한 봄날 점심시간에 내가 운동장을 돌고 있는데, 현철이가 친구들과 축구를 하러 나왔다.

아이들이 나에게 “교감선생님도 우리들하고 같이 축구하세요.”라며 나를 초청(?)하는 것이었다. 나는 의도적으로 현철이와 한 편이 되어 현철이에게 패스도 해 주었지만, 현철이의 운동신경은 많이 둔해서 내가 보낸 공을 잘 처리하지 못했다. 다른 아이들은 현철이에게 공을 주기만 하면 빼앗기니까, 패스도 하지 않으려는 듯하였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공을 따로 하나 챙겨서 현철이와 패스 하는 것부터 연습하였다. 그것을 본 같은 반 석현이라는 아이가 나중에는 현철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같이 공도 차주고, 잘 챙겨주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현철이도 나보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이제는 내가 더 이상 필요 없겠다는 생각에 석현이에게 현철이를 부탁하고 나는 멀리서 지켜보기로 했다. 석현이는 현철이가 찬 공을 고의로 못 막은 척하며 골을 넣어 주기도 하였고, 그럴 때에는 현철이가 행복해하며 환호하기도 하였으며 주변에 있던 친구들은 현철이를 칭찬해 주며 자존감을 높여주기도 하였다.

석현이는 축구할 때 외에도 교실이나 어디서든 현철이를 잘 챙겨주고 도와준다는 담임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선생님들과 상의해서 모범어린이상을 추천하여 표창했다.

현철이의 얼굴이 점점 밝아지기 시작했다. 전에는 얼굴에 웃음기가 없었는데 자주 웃기도 하였고, 매일 아침에 내가 가서 하이파이브를 하면 현철이는 나에게 “교감선생님은 언제 봐도 멋쟁이예요.”라고 말하며 나를 칭찬하기도 하였다.

그러면 나도 “야~~, 현철이가 교감선생님을 칭찬해 주니, 오늘 기분이 정말 좋구나. 그런데 너도 웃으니까 정말 이쁘고 잘생겼다.”라고 말하면, 현철이는 “고맙습니다.”라고 감사의 표현도 하게 되었다. 반 아이들도 현철이를 정말 보호자처럼 잘 보살펴주고 챙겨주고 관심을 가져 주니까, 현철이도 점점 학교생활에 만족하였고, 전에는 학교 오는 것을 싫어했는데 이제는 학교 오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할 정도로 변하게 되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로 접어들면서 현철이는 더욱 안정되어 갔으며, 웃음도 많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교육복지사 선생님이 현철이와 관련된 일로 나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현철이 엄마가 요즘 육체와 정신적으로 매우 쇠약해졌고, 병원에서 처방해 주는 약도 잘 먹지 않아서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이며, 현철이는 요즘 엄마를 구박하며 욕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듣고 나서 나는 무척 놀랐다. 나 뿐만 아니라 현철이의 상황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는 모든 선생님들이 놀랐다. 학교에서는 그렇게 밝고, 착한 현철이가 집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나는 순간 현철이의 입장에서 이 상황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며 선생님에게 말했다. “선생님, 현철이의 이중적인 모습은 어찌 보면 당연한 지도 모릅니다.

현철이는 그동안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 ‘너는 재수없는 놈, 쓰레기.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놈.’이란 말을 들으며 자존감이 극히 낮아졌던 아이입니다. 다행히 교육복지 프로그램과 담임 선생님, 그리고 그 반의 아이들이 모두 협력해서 현철이를 위해 노력했고, 보살펴주며 관심을 가져주었기 때문에 자존감이 많이 회복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학교에서는 자신의 자존감이 회복되지만, 집에 가면 자신을 쓰레기라고 부르며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재수 없는 놈이라고 말했던 엄마를 만나는 순간부터 자신의 자존감은 구겨지고 과거의 아픔이 계속 살아나는 것입니다. 현철이에게 있어서 엄마라는 존재는 극복하고 뛰어넘어야 할 대상입니다.

그래서 엄마를 부인하고 싶고, 엄마를 학대함으로 자신의 자존감을 깎아내린 엄마를 공격하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저는 한편으로는 현철이가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엄마와 현철이를 당분간 분리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침 현철이 어머니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육체와 정신이 많이 쇠약해졌다고 하니, 지역사회에 도움을 구하여 병원에 입원을 시키고, 현철이는 잠시 보육시설에서 생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교육복지사 선생님이 출장을 내서 현철이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가 보니, 정말로 입원을 해야 할 정도로 심신이 매우 허약해진 상태였기 때문에 엄마를 입원시키고, 엄마의 서명을 받아 현철이는 엄마가 퇴원할 때까지 보육시설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절차를 밟았다. 우리는 모두 한편으로는 현철이가 보육시설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염려도 하였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보육시설에서도 현철이의 과거 이야기를 듣고 모든 선생님이 긴장하고 있었다고 했다. 담임 선생님과 교육복지사 선생님은 현철이의 집에 가서 옷과 기본적인 생활용품만 간단히 챙겨서 보육시설로 보내고 와서는 매우 속상해 했다. 현철이가 엄마와 헤어지는 것, 그리고 보육시설로 가는 것을 싫어하지 않고 오히려 좋아하는 모습이 더 마음이 아팠다는 것이었다.

두 분을 다독이면서 현철이의 상황을 직시할 필요가 있음을 다시 한 번 얘기해 주었다. “너는 쓰레기,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재수 없는 놈이라고 말한 엄마는 현철이에게 있어서 극복하고 뛰어넘어야 할 존재입니다. 오히려 지금은 현철이가 엄마와 생활하기보다 자신을 지지해주고, 관심을 가져 줄 다른 누군가와 생활하는 것이 더 큰 힘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현철이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 그때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생기게 될 것이고, 다시 엄마와 함께 생활할 수 있게 될 것이니 너무 속상해 하지 마세요.”

현철이는 보육시설 생활이 좋다고 한다. 첫째는 외롭지 않아서 좋다고 한다. 며칠 전에는 점심 시간에 현철이와 축구를 함께 하게 될 기회가 있었는데, 행복한 현철이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무척 감사했다. 내가 골을 넣을 때는 나에게 와서 “교감선생님은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를 하셔도 되겠네요.”라고 칭찬하는 모습을 보면 현철이의 몸과 마음이 점점 건강해 지는 것을 볼 수 있어서 행복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현철이에게 말했다. “현철아, 너는 웃을 때가 이뻐고 멋있어.”

지금은 중학교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학교생활도 잘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간혹 길거리를 지나다 만나면 반갑게 인사도 한다. 현철이가 건강하고 밝게 자라서 행복의 날개를 펴고 맘껏 세상을 향해 날아갈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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