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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루비 "비문을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
전북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에 있는 타루비

전북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국도 23호선 도로변에 있는 타루비墮淚碑는 1981년에 변산문화협회(회장 김태수) 주관으로 복원된 것이다. 글은 김태수 선생, 글씨는 (전면) 강암 송성용, (후면) 송하영 선생이 쓴 것으로 역사적 가치가 있다.

비문에는 "墮淚碑란 말의 由因, 당나라 시인 이태백의 명시 淚亦不能爲之墮 心亦不能爲之哀 란 句에서 哀切한 心情을 나타낸 것임"이라며 타루비에 대한 연유를 밝히고 있다.

비석에 적혀 있는 비문을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나온다는 중국 역사 속 한 페이지로, 김태수 선생이 지은 비문 역시 정유재란 당시 부부의 죽음에 대한 안타깝고 애절한 사연을 담고 있다.

비문에는 "전란이 끝난 뒤 고을에서는 한날한시 한 곳에서 내외분이 순절하신 그 혼과 넋을 위로하고 추모하여 타루비를 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가고 사람들의 기억마저 희미하여져서 그 타루비는 언제 어디로 갔는지 없어지고 지금 그 자리에는 잡초만 우거져있다"라며 부안사람들을 꾸짖고 있다. 1981년 변산문화협회 주도로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에 타루비를 복원하게 된다.

도곡 이유(桃谷 李瑜)는 1545년 9월 20일 전남 영광에서 태어났다. 전북 부안군 상서면 통정리 도화동에 사는 浪谷 李億榮의 양자로 가게 된다. 도곡 선생은 이곳에서 장인 김수복 현감의 지원으로 강당을 신축하고 문하생 400여 명을 교육한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에게 군량과 군기를 전달했으며, 정유재란 때는 청등 전투에서 직접 참여하였으나 후원 부대도 오지 않고 화살도 없던 차에 왜군의 총탄에 맞아 순절하게 된다. 이런 소식을 들은 부인 부령 김씨는 죽창을 들고 적진에 뛰어들었으나 참살을 당했다. 왜군들은 이들이 부부인 것을 알고 시체를 훼손하고 집에까지 쳐들어가 다량의 문집 등을 불살라 버렸다.

문하생들과 유가족들은 도곡 선생 부부의 시체는 찾지 못하고 찢어진 옷자락과 버려진 신발만을 주어다 초혼장을 지냈다.

현재 부안군 상서면 통정리 도화동 입구에는 義士 桃谷 李公 遺墟碑와 景義齋가 있으며, 뒷산에는 도곡 선생 묘소와 아버지 浪谷 李億榮 묘소가 있다. 

한편 국가문화유산포털에는 나오는 타루비는 총 3건으로 보물 2건과 전라북도 기념물 제83호 1건이 검색된다. 

정유재란 당시 도곡 선생 부부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몸을 바친 애국심과 희생정신은 후대까지 전해져야 할 소중한 역사이다.

도곡 선생 묘소(부안군 상서면 통정리 도화동)
의사 도곡 이공 유허비(부안군 상서면 통정리 도화동)
도곡 선생 유허비 옆에 있는 경의재 (글씨 강암 송성용)
도곡 이유 선생 족보(출처:함평이씨 인터넷 족보)

 

조봉오 기자  ibuan1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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