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진강

성내거나 소용돌이쳐 본 적이 없는 강
하늘을 이고 벼농사를 짓던 농부들처럼
자지러들지 않고 넘치지 않고
순종하며 흐르다가 해 지면 서해에 이르는 강
벼포기 아래로 길을 내다가
어깨 쑤시는 농부와 마주치면
그의 품으로 흘러들어 응석 부리는 강
가뭄이 들면 자라 새끼 몇 마리 물고
농부의 마당으로 들어서는 강
고부 배들 평야 곳간을 다 채워도
번쩍거리거나 건들먹거리지 않다가
하늘이 노하면 썩은 나무들 다 쓸어
먼바다에 버리는 강
갈 길 아닌 곳으로 물길 바꾸어놓으면
사람이 되어 일어서는 강
누가 동진강 물길 가는 곳마다 달음질쳐
동학군 깃발로 모으게 했는가.
동진강물을 몰아 북으로 가게했는가.
강물에 흙 묻은 발 씻을 겨를도 없이
쇠스랑 메고 죽창 들고
억새길 엉겅퀴길 맨발로 달려온 사람들아
백산산성 죽산산성 함성을 모은 사람들아
이들이 누구던가.
동진강물로 벼농사 짓던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니던가.
황톳물로 흐르다가 진흙물로 흐르다가
사랑받는 강의 노래도 되지 못하고
전봉준의 마을을 지나
동학군들이 밟아보지 못한 땅
새로 태어나는 새만금으로 가는 동진강아
썩지 말고 기름진 젖줄이되어
벼포기 같은 푸른 깃발 펄펄 날리게 하라
동학의 깃발로 일어서는 동진강아

정군수 석정문학관장(출처:표현문학회, 표현 2019 여름 제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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