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공적(功績)은 죽백(竹帛)에 드리울 만하며, 
부자형제(父子兄弟)가 동시(同時)에 목숨을 버린 것은, 
늠름(凜凜)한 의열(義烈)이라..

독일인 하인리히 슐리만은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서 영감을 받아 1870년 터키 히사를리크 언덕 부근을 발굴하기 시작하여 트로이 유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육중한 성곽과 많은 유물을 발견하게 된다.

기원전 700년대 호메로스 서사시에 나오는 그리스와 트로이 전쟁 이야기를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라고 증명해 준 귀중한 사례이다.

야수실기野叟實記는 1597년 4월 고창 장등과 부안 상략치에서 의려장 채홍국과 의병들이 왜적을 물리친 전투를 기록한 일기로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온 것을 1932년 정리하여 책으로 발행한 것이다. 

특히 야수실기의 '호벌치순절일기'에서는 1597년 3월 23일부터 4월 23일까지 채홍국 장군이 이끄는 의병들의 전투를 기록한 것으로 마지막 4월 23일 자에는 "그 뒤의 일기는 어지러워 기록하지 못했다"라고 적고 있는데 의려장 채홍국과 일족 33명, 남당회맹군 대다수가 순절한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말하고 있다.

지난 400년 동안 유림과 애국 지사들은 다음과 같이 발문과 서문을 통해 야수실기를 지지해왔다.

1923년 부안향교는 흥덕향교에 보낸 부안유장扶安儒狀에서 "이렇게 충절(忠節)이 뛰어난데, 아직도 조두(俎豆)의 예향(禮享)이 없으니, 실로 사림(士林)의 한(恨)이 되어왔습니다. 이에 바라건대 여러 선비께서 특별히 발론(發論)하여 단향(壇享)을 창설하여 한편으로는 명부(冥府)의 충혼을 위로하고, 한편으로는 열군(列郡)의 여망에 부응하도록 해주시면 대단히 고맙겠습니다"라며 공개적으로 부안 유림은 채홍국 장군과 의병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야수실기 절의록에서 홍문관대제학弘文館大提學 이만수李晩秀는 찬(撰)하기를, "처음에 장등(長磴)에서 공을 세우고, 나중에는 호벌치(胡伐峙)에서 죽었다. 뛰어난 공적(功績)은 죽백(竹帛)에 드리울 만하며, 더구나 또 부자형제(父子兄弟)가 동시(同時)에 목숨을 버린 것은, 늠름(凜凜)한 의열(義烈)이라, 고제봉(高霽峰) 경명(敬命)과 더불어 그 아름다움이 같다고 하겠다"고 하였다.

대한제국 항일운동 선봉에 나섰던 면암 최익현은 제자 고순진의 부탁으로 회맹록 서문을 남긴다. 면암은 "회맹록(會盟錄)을 간행(刊行)하는 것은, 풍기(風氣)와 절의(節義)를 격앙(激昻)하고 염치(廉恥)있는 사람을 격려(激勵)하기 위한 것이니, 값으로 따질 수 없다고 하겠다"고 적고 있다. 항일운동가 장택 고순진(정유재란 고덕붕의 9세손)은 야수실기 서문을 지었다.

의려장 채홍국은 임진왜란 공적을 인정 받아 첨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으며, 정유재란 공적에 대해서도 지방유림들의 지속적인 상소에 의하여 275년이 지난 1872년 의려장 채홍국은 병조판서에 증직되었다.

정유재란 당시 부안현감과 군졸들은 백성을 버리고 도망갔지만, 향촌 선비들과 농민, 천민, 승려들이 힘을 합쳐 죽음으로 왜적을 물리친 곳이 장등과 부안 상략치 전투이다.

1597년 4월, 5월 왜군들이 한반도를 침략한 것은 인정하면서도 유독 부안 침입 시기에 대해서만 부정하는 것에는 지역 주민들과 후손들이 수긍할 수 없을 것이다. 정유재란 왜적을 죽음으로 물리쳤던 수많은 의병들을 더이상 욕보여서는 안 된다.

한편 정유재란 당시 변산 우반동에서 왜적을 물리친 의려장 김홍원이 남긴 작전지도와 각종 문서(부안김씨 종중고문서)는 보물 900호로 지정되었으며 부안군 보안면 우반동에 있다. 해옹집과 아직 개봉되지 못한 문서를 통해 정유재란 전투가 남긴 의문점이 풀릴 수도 있기 때문에 관계자들의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의려장 김홍원이 만든 정유재란 작전지도(출처:보물 900호 부안김씨 종중 고문서 일괄)

흥덕향교에 보낸 부안유장(출처:야수실기)

대한제국 항일운동 선봉에 나섰던 면암 최익현은 제자 고순진의 부탁으로 회맹록 서문을 남긴다.

(출처: 야수실기- 절의록에서 보국숭록대부 홍문관대제학(輔國崇祿大夫弘文館大提學) 이만수(李晩秀)는 1597년 4월 의려장 채홍국과 의병들의 전투를 기록하고 있다.

빨강색 부분- 그 뒤의 일기는 어지러워 기록하지 못했다 (출처:야수실기-호벌치순절일기)

조봉오 기자  ibuan1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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