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범 전 국회의원 보좌관

느림의 미학이라고 했다. 요즘 같은 광속시대에 느림의 미학을 들고 나오는 건 또 무슨 수작인가. 광속시대에 걸맞게 살다보니 나부터도 주변을 돌아보는 게 영 오그라들 수밖에 없는 세상의 범부(凡夫)가 되어버렸다. 점점 개인화되는 세상이려니 치부나 하고 그냥 무시하고 살아내기가 영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럴 자신도 없다. 걸으면 걸을수록 이 같은 생각은 짙어진다. 세상을 좀 돌아봐야겠다.

부안시정(扶安市政)을 화두로 삼아서 걷고 또 걸은 지 몇 해이던가. 생각하건대 부안사람 치고 부안시정의 근본이 부안군민이라는데 걸림돌은 전혀 없을 것이다. 부안시정의 근본이 부안군민이라면 이를 어떤 형태로 모두고 톺아봐야 할 것인가. 근본 물음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일단은 정리해보는 수준에서 갈무리하고자 한다. 이에 대한 구체적 방안은 추후에 살펴볼 일이 있을 것이다.

먼저 삶의 질을 톺아보자.

삶의 질은 대부분 소득과 직결된다. 그렇다고 해서 꼭 높은 소득이 삶의 질마저 높인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일자리, 분명한 일자리를 통한 안정적인 소득의 보장을 갈망하는 것은 아마도 삶의 질에서 소득을 전혀 도외시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소득과 일자리란 측면에서 부안은 태생적 한계를 노정(露呈)하고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서야 여러 자구책들이 시도되고 있지만 갈 길은 아직도 멀다.

둘째, 시장가치를 톺아보자.

시장가치는 교환가치이다. 인간이 누리는 삶의 기저에는 늘 교환가치가 중심에 있었고, 이를 무시한 채 경제공동체로서의 기능을 활성화시켜갈 수 없었다. 부안군민의 삶을 잘 드러내는 부안상설시장은 교환가치가 상례화 된 곳 중의 대표공간이다. 그러한 부안상설시장이 우리가 체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쇠락의 길을 가고 있다.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안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관념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부지원에만 목매고 있는 것 같아서 참 씁쓸하다. 전통시장을 살리겠다고 쏟아 부은 돈만 해도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까까중머리때 누나가 주는 용돈을 타기 위해서 부안상설시장을 일주일이 멀다하고 드나들던 그때는 생기가 넘쳤는데 정말로 안타깝다.

셋째, 인구데드크로스를 톺아보자.

사망자가 출생자보다 많아지는 것을 ‘인구데드크로스’라 한다. 부안뿐만이 아니라 농산어촌의 경우, 아마도 수 십 년 전부터 인구데드크로스에 접어들었을 것이다. 1960~70년대부터 가속화된 산업화로 청장년의 지방탈출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인구감소는 결국 웬만한 문제의 출발점이 된지 오래다.

급기야 우리나라의 인구마저 작년 사상 처음으로 줄었다는 행정안전부 통계가 발표되었다. 출생자가 27만 명(27만5815명)대로 최저치를 기록해 사망자 30여만 명(30만7764명)을 밑돌았고 이러한 인구감소현상은 지속될 것이라 한다. 인구감소를 멈춰야 할 타개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지난해 정부는 저출생대책으로 역대 최대인 45조원을 쏟아 부었지만 출생자를 높이는데 실패했다.

인구정책은 국가사무로써 국가가 책임지고 발상의 전환을 이뤄내야 한다. 무상급식 때처럼! 인구정책(인구늘리기)에 들인 예산만 해도 지난 10여 년간 200조원이 넘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자체에 많은 부분 위임사무로 전가되어 예산집행의 실효성을 거두고 있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여러 인구정책들이 윗돌 빼서 아랫돌 막는 경우가 아니었는지 되새겨야 할 때다. 인구정책만큼은 삶의 질을 높이는 가치지향과 고령사회를 지탱할 수 있는 문화사회보건경제적 판단의 총화로 생성되어야 하고 집행되어야 한다.

넷째, 청년의 미래를 톺아보자.

청년의 미래문제는 작금에 닥친 가장 암울한 현상의 대표적이라 할만하다. 특히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얼어붙은 고용시장과 반강제적 취업포기가 증가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청장년층의 비율이 현저히 낮은 농산어촌의 경우라고 해서 덜할까. 아니다. 그들 지역만의 고충 또한 도시지역과 별반 다르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마땅한 일터마저 없는 태생적 한계가 더 추가되어서 지방을 더 암울하게 만든다. 청년의 미래가 암담하다면 지역과 국가의 미래 또한 암울할 것이다. 청년문제는 인구문제와 직결되고 고령사회의 사회체계와도 직결되기 때문에 이의 해결책을 우선적으로 강구해야 할 것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할 정책적 고려가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부안은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해결책을 강구하는 생각을 멈추지 않아야 하고 정책적 총의를 모아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군정에서 필요로 하는 각종 위원회와 각 사회단체 간 활용방안을 청년의 미래에 두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은퇴 후의 삶을 톺아보자.

보험개발원 보험통계에 따르면 지금의 40·50대는 은퇴 후 자녀 교육과 결혼에 평균 2억 원 정도의 목돈이 들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퇴직급여는 1억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은퇴자들은 소득 감소로 타격을 받게 되지만 노인 3명 중 2명은 경제적 금전적 도움을 받을 상대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업의 유무에 따라 통계와는 일정부분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부안군의 경우도 비슷한 상태에 있을 것이다. 아니 더 많은 빈곤노인층이 상존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이의 해결을 위한 정책적 고려가 있어야 함은 지극히 당연한데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결국 이는 행(行)정(政)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여섯째, 행(行)정(政)을 톺아보자.

행은 력(力)이고, 정은 치(治)이다. 특히 목민관(牧民官)이 펼쳐야 할 도리이고 정치이다. 이의 중심은 역시 민생이다. 1991년 기초의회선거와 광역의회 선거가 실시되었으나, 본격적인 지방자치는 1995년 6월 27일 제4회 지방선거에 의해서 실시되었다. 이 후 많은 사람들이 지방의 행정을 담당하고자 나섰으나 자치권에 기한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제도와 예산의 문제가 그 중심에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생을 살펴야 할 목민관으로서의 자치단체장과 의회의원들의 책무는 막중하다. 월급쟁이(?) 비정규직 공무원으로서의 역할에 머물러 있어서는 아니 된다는 의미이고 허투루 자리를 탐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제도가 미흡하고 예산이 없어서 뭘 못하겠다는 습성을 당장에 떼려치워야 민생이 보이고 해결책이 보이게 될 것이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코앞에 닥쳐있다. 부안군에서도 2022년 6월 1일에 실시되는 지방선거에 출마하려고 벌써부터 뜀박질이 시작된 모양이다. 그러나 뜀박질에 뛰어들기 전에 최소한 “왜? 무엇을? 누구를? 어떻게? 언제?”는 찬찬히 생각하고 뛰어들 것을 권한다. 부안군과 부안군민 앞에 놓인 난제들의 파고를 어떻게 넘을 것인지 생각하고 실천하는 게 일상이 될 것을 기대한다. 생각하면 길이 열리고, 길이 열리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안군민으로부터 4년간 위임된 비정규직 공무원(?)이 살펴야 할 민생은 그들이 지녀야 할 최소한의 양심이기 때문이다. 누가 이 길을 가는지 살필 것이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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