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인문학 역사문화
중학생들은 큰다리까지 뜀박질을 했다

부안군 하서면 언독리에 있는 큰다리(대교)는 이름에서 보듯이 규모가 매우컸다.

큰다리(두포천배수갑문, 소화 10년)는 1935년 5월 준공됐다. 매일신보 1935년 10월 31일 자 신문에서는 부안군 행안면 두포천은 소화 9년(1934년)에 궁민구제사업窮民救濟事業으로 신축했다고 보도했다.

반면, 하서 토박이 K 씨는 "약산이는 만경에 있는 조카를 불러들여 큰다리 정미소(매가리깐)를 운영하다가 해방 후 직원에게 잠시 맡겨 놓은 것을 여태껏 찾으로 오지 않았다"라고 말하며, "약산이는 큰다리에서 돈지까지 신작로를 냈으며 인근 토지 구획정리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어르신들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약산이는 백산미곡상조합장을 했으며 매가리깐을 크게 운영했던 인물이다. 큰다리 주민들이 기억하는 약산이는 백산 뿐만아니라 큰다리에서도 매가리깐을 운영한 것으로 알고 있다.

계화간척지와 새만금방조제 준공으로 두포천 기능이 상실되어 주점이나 식당들이 문을 닫았으며 매가리깐도 기능이 쇠퇴했다고 한다.

1960년대 부안중학교 학생들은 연례행사로 매년 큰다리까지 비포장 도로를 뛰어갔다 왔으며, 소풍은 걸어서 개암사까지 다녀왔다.

이러한 연유로 큰다리에 대한 향수가 있다. 1970년대 이병기(부안고 8회, 전 교장) 학생이 큰다리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책가방을 안고 있는 것으로 봐서 등교 사진으로 보인다.

현재 큰다리는 없어지고 사진만 남았다. 그리고 표지석은 아무렇게 버려져 있어 세월의 무상함을 보여준다. 앨범이 아니면 찾아볼 수 없는 과거의 기록이다.

한편, 두포천은 백제부흥군을 돕기 위해 왜국에서 원정을 온 왜선들이 주류성까지 들어온 물길로 알려져 있다.

출처:매일신보 1935년 10월 31일, 국립중앙도서관
큰다리에서 포즈를 취한 부안고 이병기 학생 사진(이인기 학장 제공)
큰다리 사진(출처:1957년, 약진하는 부안군의 이모저모)
큰다리 부근에 버려져 있는 두포천배수갑문 표지석
두포천배수갑문 표지석
큰다리 정미소(출처:1957년, 약진하는 부안군의 이모저모)
하서 병원 사진(출처:1957년, 약진하는 부안군의 이모저모)
약산若山 부안백산미곡상조합장(출처:조선의인물과사업 호남편, 1936년, 국립중앙도서관 캡처)

 

약산若山 부안백산미곡상조합장(출처:조선의인물과사업 호남편, 1936년, 국립중앙도서관 캡처)
하서면사무소(출처:1957년; 약진하는 부안군의 이모저모)
돈지 포구(출처:1957년, 약진하는 부안군의 이모저모)
송호정(출처:1957년 약진하는 부안군의 이모저모)
(출처:1957년 약진하는 부안군의 이모저모)

 

 

 

조봉오 기자  ibuan114@naver.com

<저작권자 © 부안인터넷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조봉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