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눈, 하얀 이, 푸른 눈썹의 계랑아..

1610년 여름 38세 이매창이 죽었다.

님을 향한 마음의 병이 깊어 저 세상으로 돌아 갔다고 한다. 매창 죽음의 원인 제공자이며 공식 남자 1호 유희경柳希慶은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다만, 죽은 사람에게 '맑은 눈, 하얀 이, 푸른 눈썹 계랑'을 외쳐본들 외롭게 죽은 매창에게 무슨 위로가 되겠는가..

"맑은 눈 하얀 이에 눈썹 푸르던 아가씨야/ 갑자기 구름 타고 어디 가고 막막한가/ 넋일랑 떨어져서 패읍으로 돌아가고/ 옥골은 어느 뉘가 고향에 장사했나/ 객지에서 죽어가니 조문객이 다시없고/ 오로지 경대 남아 옛 향기 슬프구나/ 정미년 간 우리 둘이 서로 만나 즐겼는데/ 슬픈 눈물 흘러나와 옷자락을 적시누나" (출처:매창전집, 부안문화원)

정3품 당상관 허균 역시 매창의 죽음 소식을 듣고 계랑의 죽음을 슬퍼하며(哀桂娘)를 지었다.

"아름다운 글귀는 비단을 펴는 듯하고/ 맑은 노래는 구름도 멈추게 하네/ 복숭아를 훔쳐서 인간 세계로 내려오더니/ 불사약을 훔쳐서 인간 무리를 두고 떠났네/ 부용꽃 수놓은 휘장엔 등불이 어둡기만 하고/ 비취색 치마엔 향내가 아직 남아 있는데/ 이듬해 작은 복숭아가 열릴 때쯤이면/ 그 누가 설도의 무덤 곁을 찾아오려나" (출처:매창전집, 부안문화원)

매창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쉬움은 허균의 시에 잘 묻어나 있다. 1611년 허균은 매창이 죽은 뒤에도 매창이뜸을 찾았다.

매창과 유희경, 그리고 뒤늦게 나타난 허균의 러브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1586년 18세 매창은 46세 유희경을 만나 사랑의 교감을 나눴다. 이후 매창은 서울에 있는 유희경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조가 교과서에 실렸던 이화우(梨花雨)이다.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나를 생각하는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더라" (출처:매창전집, 부안문화원)

유희경 역시 처음으로 기생과 사랑에 빠진 추억을 생각하며 지은 시가 계랑을 생각하며(懷癸娘)이다.

"그대 집은 낭주에 있고/ 나는 서울 한구석에 살고 있으니/ 그리움 사무쳐도 서로 못 보고/ 오동나무 비 뿌릴 제 창자 끊기네" (출처:매창전집, 부안문화원)

1592년 임진왜란으로 두 사람은 상당기간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1607년 매창은 유희경과 10여일의 꿈같은 일정을 가졌다.

그러나 이별의 시간이 길어지자 매창은 죽음을 예고한 시를 남긴다.

"한 번 갇힌 조롱 속에 돌아갈 길 막혔으니/ 곤륜산 학의 고향 남풍은 어드메뇨/ 푸른 들에 해가 지고 창공은 끊겼는데/ 구령의 밝은 달이 꿈속에 괴로워라/ 야윈 모습 외짝으로 수심겨워 서 있는데/ 황혼에 갈가마귀 나무 가득 지저귄다/ 긴 털 병든 나래 죽을 때를 재촉하니/ 슬피 울며 해마다 깊은 못을 생각하네" (출처:매창전집, 부안문화원)

1609년 9월 매창에게 보낸 허균의 연서는 안타깝게도 그녀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계랑에게,
봉래산의 가을빛이 한창 짙어가니 돌아가고픈 생각이 문득문득 난다오. 내가 자연으로 돌아가겠단 약속을 저버렸다고 계랑은 반드시 웃을 거외다. 우리가 처음 만난 당시에 만약 조금치라도 다른 생각이 있었더라면 나와 그대의 사귐이 어찌 10년 동안이나 친하게 이어질 수 있었겠소. 이젠 진회해秦淮海를 아시는 선관禪觀을 지니는 것이 몸과 마음에 유익하다오. 언제라야 이 마음을 다 털어 놀 수 있으리까. 편지 종이를 대할 때마다 서글퍼진다오" (출처:매창전집, 부안문화원)

매창이 어리석은 것인지, 아니면 허균의 플라토닉 러브레터가 유희경의 밀당에 못 미친 것으로 봐야 되는 것인지..

거문고와 함께 매창이뜸에 묻혀 있는 매창 묘에 큰절 하고 있는 한량들을 바라보는 여인의 모습에서 혹시 누구를 향한 분노와 외로움을 대신하고 있는지 안쓰러워 보인다.(첫 번째 사진)

매년 매창이뜸을 찾아 벌초하고 술을 올리던 부안문화원장 윤갑철 선생과 지인들의 모습이다.(두 번째 사진)

한편, 1668년 부안 아전들은 매창시를 모아 목판본 매창집을 만들었다. 현재 남아 있는 매창집은 부안에는 없고 간송미술관 2권, 미국 하버드대 엔칭도서관 1권이 남아 있다.

2001년 매창이뜸을 대대적으로 보완하여 매창공원으로 조성했고, 2019년 매창사랑의테마공원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사업을 주도한 단체장들은 재선 연임에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