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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포만(곰소만) 어업에 대하여(4)객주와 어업조합의 대결

1931년 변산어업조합이 줄포에 설립되었다.

그동안 어민들을 상대로 많은 이득을 취했던 객주들에게 도지사 명령의 어업조합 설립은 파산선고를 받는 것과 같았다.

1931년 2월 10일자 동아일보 제목은 "위도어민생활난, 줄포방면 량도가 전면 두절, 어업조합은 기채운동"이다.

수산물을 잡아서 빚을 갚아야 하는 위도어민 700가구는 빚을 갚지 못해 량도粮道가 전면 두절으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는 보도이다.

1935년 12월 11일 조선중앙일보에서는 어업조합 설립에 반발하는 객주들이 자금선대資金先貸를 거절하여 3千海商人들이 타격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전라북도에서 지휘하는 어업조합 설립을 객주들이 힘으로 막을 수는 없었다. 일정 기간 어민들만 힘들게 되었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칠산어장 수산물 객주였던 壺岩主人 그리고 줄포 海王 朴敬三이 운영했던 어상권은 일제에 의해 빼앗겼다.

결국, 박경삼은 모든 것을 정리하고 줄포를 떠났을 것이다. 줄포 사람 박경삼에 대한 기록은 2003년 발간 '내고향 줄포' 부록(김장순 회고록)에 나와 있다. 

한편, 1922년 3월 24일 줄포수산茁浦水産(株)이 건선면 줄포리 542번지에 설립되었다. 어시장과 창고업을 목적으로 했으며 자본금 50,000엔으로, 대표는 三宅助六이다.  이사는 今井德次, 岡本武政, 靑木叔夫, 穴吹貞吉, (감사)小山淸重, 黑田林次郞이다.

끈질기게 줄포만(곰소만) 어장을 훔치려했던 그들은 급기야 염전(南鮮化學工業株式會社)까지 노렸으나 전쟁 패망으로 이곳에서 쫓겨났다.

출처:2003년 발간, 내고향 줄포
(출처:동아일보19310210,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캡처)
(출처:동아일보1935121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캡처)
출처:곰소灣의 漁業과 漁村硏究, 김일기, 1988년, 서울대지리학과

 

 

조봉오 기자  ibuan1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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