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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군 객주/어업조합 이야기(2)1931년 邊山漁業組合=1935년 茁浦灣漁業組合

1919년 위도어업조합(당시 전남)
1921년 의복리어업조합
1931년 변산어업조합

부안군 어업조합 연혁은 1942년 발간된 조선어업조합요람을 근거로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변산어업조합邊山漁業組合은 1931년 7월 31일 靑木叔夫(아오키요시오)외 7명 발기인으로 어업령에 의거 어업조합 설립을 신청(어업구역은 부안군 산내면) 했으며, 1931년 12월 26일 설립 인가받았다.

1933년에는 해태양식, 위탁판매사업 확장들을 추가로 인가 받았다. 1934년 5월 1일에는 보안면(신복리, 유천리, 영전리), 줄포면(줄포리, 장동리, 우포리)를 어업지역으로 지정받음, 줄포만 연안 어촌도 포함시켰다.

1935년 5월 29일에는 변산어업조합을 줄포만어업조합茁浦灣漁業組合으로 개칭했다.

1935년 1만엔을 투자하여 판매소를 설치하고, 객주들을 설득하였다. 1936년 4월 1일 판매사업에 착수하여 첫해는 각종 방해가 있었으나 점차 좋아졌다.

1937년 줄포위탁판매소 설치하여 어획물 위탁판매를 개시하였으며, 기존의 객주 세력들을 압도해 버렸다. 나중에는 객주들도 이해하고 판매방법 등을 개선하였다. 

전라북도어업조합연합회에서 경영하던 줄포후포위탁판매소 일체를 1941년 산내면 운호리(관선불)에 건설하고 있던 해태양식간이실험소에 양도하여 줄포만어업조합이 경영하였다.

어업구역도 산내면(진서리, 중계리, 운호리, 도청리, 운산리, 격포리, 위도, 지서리, 대항리), 보안면(신복리, 유천리, 영전리), 줄포면(줄포리, 장동리, 우포리) 등으로 확대하였다.

종래 조합원들은 일반적으로 빈곤했다. 대부분 객주업자(問屋) 자금을 공급받고 있었으며 금리는 5할 이상의 고리였다.

김일기 교수의 논문(곰소灣의 漁業과 漁村硏究, 1988년, 서울대)에는 수산물 객주가 어민들에게 提示 하는 몇 가지 조건은 ▲전대금에 대해서 어황 如何를 불문하고 매월 3分의 이자를 지불할 것 ▲어획물은 반드시 資本主에게 매도해야 하며, 가격은 시가보다 싸게 할 것 ▲어획이 있을 때에는 그 풍흉을 불문하고 借入金에 충당할만큼의 금액만을 먼저 공제해서 자본주에게 返濟하여야 하며, 계속 고기가 잡히지 않아 밀린 돈을 갚지 못할 경우에는 월 3분의 이자를 원금에 가산하여 借用증서를 재작성할 것 ▲현금 이외에 일용품 등을 先貨하는 경우에는 시가보다 1할 내외 비싸게 하고 이를 현금으로 하는 경우에는 환산하여 이자를 지불할 것 등이다. 

1934년 줄포만어업조합은 기채를 얻어 어업자금대부사업을 개시했다. 1941년도 81만1천원을 대부하여 중소어업자 어업금융지원을 실시했다. 공동시설로 위탁판매소 설치, 염장, 공동창고, 공동제조장을 설치하였다.

수천 년 이어 왔던 객주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조선총독부 어업령에 따른 어업조합이 들어섰다. 1961년 줄포만어업조합은 곰소어업조합에 합병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한편, 일본인이 주축이 된 茁浦水産(株)은 1922년 3월 24일 건선면 줄포리 542번지에 설립되었다. (대표) 三宅助六 (이사) 今井德次, 岡本武政, 靑木叔夫, 穴吹貞吉 (감사) 小山淸重, 黑田林次郞(출처:朝鮮銀行會社要錄(1923년판), 東亞經濟時報社)

三宅助六(미야케스케로쿠) 집은 줄포리 145번지였다. 지금도 규모가 매우 큰 기와집이 남아 있다. 특히 줄포수산 이사에는 1931년 변산어업조합 최초 발기인이었던 靑木叔夫(아오키요시오)이 포함되어 있다.

광고(출처:19480813 수산경제신문)
출처:1942년, 조선어업조합요람 표지, 국립중앙도서관
三宅助六(미야케스케로쿠) 집, 줄포면 줄포리 145번지
출처:1957년 부안군 이모저모

 

 

 

 

 

 

조봉오 기자  ibuan1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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