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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백남신 부동산 투기 대박쳤다(3)..  동진면, 백산면 일대 농지 대규모 소유

1948년 미 군정은 조선총독부와 일본인이 소유했던 토지 2780㎢를 587,974가구에 매각했다. 당시 남한 농업 인구의 24.1%에 해당하는 농민이 새로운 농지를 갖게 되었다.(출처:대한민국 만들기, 그렉 브라진스키)

당시 부안군청을 수시 출입했던 사람들이 적산 농지를 대량으로 헐값 매입하여 졸지에 부자되었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동진면, 백산면, 줄포면, 보안면 등지에 산재해 있었던 일본인(회사) 소유 토지, 임야들을 적극적으로 매입했다.

#1)賀田金三郞은 부안군 上西面 嘉五里, 甘橋里, 舟山面 士山里의 2면 3동리에 걸친 국유미간지 206ha를 대부 받아 양잠업을 주로 하는 농장을 건설하였다.

#2)小倉武之助는 1926년~1944년까지 부안군 보안면 신복리 앞에 228ha에 南鮮化學工業株式會社 이름으로 줄포염전을 조성했다. 줄포염전 건설 비용은 280만엔 이었다.(1927년 부안군청 공사비 1만 2천엔, 백산교 공사비 2만 8천엔)

#3)이완용 소유 동진면 농지 200ha(61만평)는 일본인 부동산업자 窪田好助에게 1917년경 전량 매각했다.

하지만 친일파로 분류되었던 조선인들이 소유하고 있었던 토지는 해방 이후 꾸준히 상속되거나 매각되었다.

이완용 토지 부근에는 백남신, 백주현, 이완용, 천야장구 등이 이웃하며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일본인 대지주, 동척, 친일파 등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는 고부천과 동진강을 끼고 있는 상답에 해당된다.

패키지로 같이 매입했거나, 뇌물로 받았거나, 농민들이 간석한 토지를 강제로 빼앗던지 순수한 의도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부안군 동진면 장등리 275번지 백남신 소유 농지(출처:1915년 지적도, 국가기록원)

1915년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지적도에 의하면, 부안군 동진면 하장리 212번지~266번지 토지 소유자는 일본인 24건, 동척 11건, 조선인(친일파 포함) 23건, 국유지 1건이었다. 전체 토지의 59%를 일본인, 동척이 소유하고 있으며 친일파까지 포함하면 규모가 더 된다.

부안군 동진면 하장리 0658~0684 번지에는 일본인 5건, 동척 9건, 이완용 4건(하장리 661, 665, 669, 682번지), 조선인 9건이 있었다.

동진면 하장리 001번지부터 1001번지 토지 소유자는 일본인, 동양척식주식회사(이하 동척), 친일파, 조선인, 국유지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다음은 부안군 동진면, 백산면 일대 농지를 소유하고 있었던 친일파, 동척, 일본인들에 대한 행적을 소개한다.

동진면 하장리에는 일본인 阿部市太郞-阿部房次郞(형) 형제가 1912년 8월 전라북도 김제에 임시사무소를 설립한 후 토지를 대량으로 매입했다. 처음에는 阿部農場라 칭하고 형과 함께 공동 경영하다가 형이 사업에서 손떼자 阿部市商店 金堤農場으로 개칭하였으며, 1936년 소유 토지는 논 700町步, 밭 200町步이다.

川野長久는 부안읍 이층양옥(현 부안교육문화회관)에 살면서 부안군 토지 280町步를 갖고 있었다. 도의원 재선, 고부수리조합장 재선을 했다.

부안군 동진면 토지를 소유한 일본인 대지주들은 다음과 같다.

右近義太郞(朝鮮電氣株式會社 대표), 大森五郞吉(群山興農合資會社 대표), 川野澄生(扶安自働車株式會社 대표), 宮本正盈, 石田龜太郞(군산 西濱町에서 정미공장, 농장경영), 眞田茂吉(全北輕便鐵道株式會社 감사), 石川縣農業(株)(본점 전라북도 김제군 김제면 신풍리 209, 대표 中島德太郞), 福田有造(木浦商船組(株) 대표), 上村久茂(扶安自動車(株) 대표), 三宅浦之助(1906년부터 부안군에 농장을 개설하여 30여 년간 농장 경영), 岩下淸周, 赤木峰太郞(농장은 정읍, 김제에 걸쳐 있으며 논 550정보, 밭 90정보)

熊本利平(熊本農場)은 沃溝郡 開井面에 本場과 出張所를 두고 沃溝郡 大野面과 井邑郡 龍北面에 支場을 두었는데 부안군 동진면에도 토지가 있었다. 대부분 논이고 총면적이 4000町步를 소유했다.

부안군 백산면 토지를 소유한 일본인 대지주들은 다음과 같다. 

동척, 熊本利平, 岩下淸周, 赤木峰太郞, 右近義太郞(朝鮮電氣株式會社 대표), 藤田俊一, 山本愛之助, 鈴木仁三郞, 大森五郞吉(群山興農合資會社 대표), 右近義太郞(朝鮮電氣株式會社 대표), 熊本利平, 相川藤平, 本山彦一(大阪每日新聞 대표, 대지주), 伊藤光三郞 (扶安郡 平橋里에서 농업을 경영), 大森五郞吉(群山興農合資會社 대표), 右近義太郞(朝鮮電氣株式會社 대표), 農産會社 不二興業株式會社, 그리고 백남신은 백산면 금펀리에 대규모 토지를 소유했다.

백산면 용계리 현 백룡초등학교 부지는 일제강점기 東洋拓殖會社 裡里支店 白山駐在所와 창고(5동)로 사용 되었다.

조선일보(1930.05.24)에는 "東洋拓殖會社 裡里支店 白山駐在所 관내인 扶安農場 農監이 100名 小作人의 小任權을 剝奪한데 분개한 小作人이 農監을 毆打하고 爭議에 돌입하다. 이로 因하여 40餘名이 被檢되다."라고 보도했다. 당시 동척의 농민수탈을 짐작할 수 있다.(출처:한국사데이터베이스)

한편, 부안군 농민들은 조선조, 일제강점기, 미군정 등 수난기를 거쳐왔지만 권력을 가진 자들의 땅 욕심으로 소작인 신세를 면치 못했다.

동진면 안성리 토지(출처:1915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지적도, 국가기록원)

 

 

 

 

 

 

 

 

조봉오 기자  ibuan1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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