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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군 학생들 일제 식민지 교육에 항거하다주산보통학교, 백산보통학교, 줄포보통학교 졸업생들까지

일제강점기 부안군 학생들의 식민지 교육에 항거한 자료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부안군에서는 관련 자료를 토대로 일제강점기 부안군 학생들의 독립운동을 재조명해야 한다.

주산보통학교 학생들이 1926년 6.10만세운동이 거국적으로 일어났던 시기에(6월~7월) 총 3회에 걸쳐 동맹휴교를 단행했음을 당시 학적부를 근거로 부안인터넷신문이 최초 보도했다. 

1928년 7월 1일 부안청년동맹, 신간회부안지회에서 개최한 간사회(집행위원회) 안건에 '學生盟休(학생동맹휴학)'이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신간회부안지회 간사회에서는 임석경관이 '學生盟休에 關한 件'을 討議中止 했다는 점에서 당시 부안군 학생들이 일제 식민지 교육에 집단적으로 항거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음은 부안문화원(원장 김영렬) 김경성 사무국장이 알려온 백산보통학교, 줄포보통학교 출신 독립유공 활동이다.

 백산보통학교 동맹휴학은 다음과 같다. "부안 백산공보교 보습과 생도들은 지난 6월 8일부터 일제히 동맹휴학을 하였는 바, 그 맹휴하게 된 원인을 들으면 동교선생으로 있는 엄 모씨의 행동에 대하여 늘 불평을 품고 있다가 당일에 드디어 맹휴盟休를 단행하게되었다"(출처:중외일보, 1928.06.15)

줄포보통학교 졸업생인 건선면 줄포리 560번지 엄규영(배재고보 5학년), 건선면 줄포리 683번지 김한중(중앙고보 2학년) 등이 1930년 1월 경성에서 만세운동을 했다.

줄포보통학교 학적부(국가기록원 소장)를 검색한 결과 엄규영 씨는 줄포보통학교 9회(1925년 졸업, 6년제)이며, 김한중 씨는 졸포보통학교 17회(1933년 졸업, 6년제)이다.

엄규영 씨 국가보훈부 공훈 기록은 다음과 같다. 김한중씨 후손들은 독립유공자 신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1929년 11월 3일 전라남도 광주(光州)에서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다. 1930년 1월 서울에서도 20여 개교에 달하는 각급 여학교와 남학교의 ‘연합시위운동’이 추진되었다.

엄규영은 당시 배재고등보통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1월 14일 휘문고등보통학교(徽文高等普通學校)의 정황학(鄭黃鶴)으로부터 남녀 중등학교 학생들의 연합시위운동 계획을 전해 듣고 배재고등보통학교의 동참을 약속했다. 1월 15일을 기해 종로네거리에 모여 연합시위운동을 벌이기로 한 것이다.

1월 15일 오전 10시경 인근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교내에서 만세를 부르자 배재고등보통학교 학생들도 이에 호응하여 교정에 모였다. 학생들은 만세를 부르며 교문 밖 진출을 시도했으나 경찰의 저지로 실패했다. 일부 학생들이 담장을 넘어 탈출하여 시가행진을 벌였다. 엄규영은 이 일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1개월여의 구류 끝에 기소유예를 받았다. 학교는 그에게 무기정학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한편, 엄규영(독립유공자)는 이후 줄포중학교(1949~1958년), 고창대성중학교(1958~1961년), 운산중학교(현 변산서중) 학교장으로 애국하는 인재 양성에 몰두했다. 1980.08.25 사망하였다. 정부는 201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으며, 2019.06.17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출처: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공적조서
출처:줄포중학교
출처:국립대전현충원
출처:한국사데이타베이스

 

 

 

조봉오 기자  ibuan1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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