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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군 동맹휴교 학적부 기록.. 1926년 주산보통학교 유일

주산보통학교 학생들은 1926년 6.10 만세운동 시기에 총 3회에 걸쳐 동맹휴교를 했으며, 이와 관련하여 26명이 무기정학, 유기정학 처분을 받았음이 학적부에 기록되어 있다.

중외일보(1928.06.15)는 "부안 백산공보교 보습과 생도들은 지난 6월 8일부터 일제히 동맹휴학을 하였는 바, 그 맹휴하게 된 원인을 들으면 동교 선생으로 있는 엄 모 씨의 행동에 대하여 늘 불평을 품고 있다가 당일에 드디어 맹휴盟休를 단행하게되었다"라고 보도했다.

한편, 중외일보(1928.07.05)는 "1928년 7월 1일 부안청년동맹, 신간회부안지회에서 개최한 간사회(집행위원회) 안건에 '學生盟休(학생동맹휴학)'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신간회부안지회에 참석한 임석 경관은 '學生盟休에 關한 件'을 討議中止 했다."라고 보도했다.

정리하면, 1926년 주산보통학교 동맹휴교 사건이 지역 학교에 전파되었으며, 1928년 신간회부안지회와 부안청년동맹 안건에 學生盟休(학생동맹휴학) 포함될 정도로 부안군 학생들이 집단행동을 통해 일제에 항거했다는 시국 정세를 말하고 있다.

다른 학교에도 동맹휴교에 관한 기록이 있는지 학적부를 검색했다.

줄포보통학교 1918년~1928년 입학생 학적부를 찾아봤으나 동맹휴교에 관한 기록이 없었다. 오히려 1926년 주산보통학교 동맹휴교에 가담해서 23일간 등교정지 처분을 당했던 김경철金炅喆  학생이 줄포보통학교 5학년에 편입하여 16회로 1932년 졸업했다. 

金炅喆씨는 주산면에서 돈계한약방을 열어 주민 건강과 질병 치유에 이바지한 바 있다.

백산보통학교 1925년~1930년 입학생들의 학적부를 찾아본 결과 동맹휴교에 관한 기록이 없었다. 1928년 백산보통학교 보습과 학생들의 맹휴가 있었다는 중외일보 신문 기사가 있었지만 보습과 학적부 존재가 없어서 확인하지 못했다.

1926년 주산보통학교 동맹휴교 이후 졸업생들의 학적부에서는 1927년에 입학한 박00 학생이 4학년(1930년) 재학 시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음이 확인됐다. 사유는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특히 주산보통학교 1925년 입학생부터 학적부에 각종 상을 받은 기록이 유난히 많았다. 1924년 입학생들의 무기정학, 유기정학 처분 사항과 확연히 구별되는 학적부이다.

일제강점기 부안군 학생들의 독립운동 활동이 재조명되어야 한다.

중외일보 1928.07.05, 출처:국립중앙도서관
김경철 주산보통학교 1회 졸업, 줄포보통학교 16회 졸업(출처:국가기록원)
백산보통학교 학적부(출처:국가기록원)
줄포보통학교 학적부(출처:국가기록원)

 

 

 

 

 

 

조봉오 기자  ibuan1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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