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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부안 학교(13).. 지정환 부안치즈 될 뻔 ♬

지정환 신부는 1961년 천주교 부안성당에 부임하여 곧바로 간척사업을 추진했다. 

대표적인 간척사업이 부안군 보안면 신복리 30만평이다. 지 신부가 낭주학회 소유 신복리에 관심을 가졌던 계기는 김용태 서무과장(1961~1976)의 조언이 있었다.

지정환 신부와 김용태 과장은 의형제 맺었던 사이로 낭주학회 소유 토지를 개간하여 천주교 신자들의 자립을 돕도록 하는 신앙심의 발로가 있었던 것 같다.

김용태 서무과장은 김대건 신부와 같은 집안인 김해김씨 천주교성인공파이다. 1846년 김대건 신부 순교 이후 가족들은 전국으로 피신했는데 그중 큰집 김양배(김해김씨 71세손)이 부안군 변산면 불무동에 정착했다. 1900년대 초 부안군 하서면 등용리 갈대밭 2만 4천평을 구입하여 정착했다.

지 신부는 신복리 간척사업으로 이주민에게 토지를 나눠주었으며 세대별로 산양을 키우도록 했다. 산양을 키우도록 한 것은 젖소에 비해 구입 비용이 저렴하기도 하지만 임실치즈와 같은 수익성이 나는 사업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신복리 새마을(신복 공소가 있는 간척지 마을)에 분양된 산양들은 모기들의 극성으로 대부분 죽었다고 한다. 부안성당 성모유치원 자리에도 지 신부가 보낸 산양들이 사육되었다고 한다.

지 신부의 열정적인 노력은 결국 병을 얻어 부안치즈 결실을 맺지 못하고 고향 벨기에로 가서 6개월 요양을 하고 왔다.

건강을 회복하고 부안 신복리를 찾아왔으나 염해로 인해 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간척사업 노동자들이 토지를 매각하고 떠났다는 현실에 지 신부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천주교 인사 발령에 따라 임실성당에 부임하여 그곳에서 지정환 임실치즈라는 거대한 결실을 맺은 것이다.

임실치즈 체험장을 찾는 관광객은 한 해 수백만명으로 임실군 관광수입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만약 지정환 부안치즈라는 브랜드가 나왔더라면 ..

천주교 전주교구 부안교회 70년사에 신복리 간척사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신복 공소 설립은 간척 공사와 직결된다. 부안여중 소유였던 신복리 해안 간척을 위해 각 공소별로 신자 1세대씩 9세대를 선정하여 이주시킨 후 본당의 지원 아래 간척 공사를 1961년에 시작하여 1962년에 완공한 후 공소를 설립했다. 

공사를 위해 이주한 신자들은 물론 타 공소에서 인부로 동원된 사람들에게 삯을 주면서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조기에 공사를 마무리 한 것이다.

그러나 염해로 인하여 농사를 지을 수 없고 물마저 부족하여 생활이 어려워지자 그 세대만 남고 모두 이곳을 떠나버렸다.

홍순세(베드로) 회장은 이주한 사람 중 유일하게 공소를 지켜왔으며, 이남식(바오로)은 구 세대로서 외롭게 신앙을 지켜오고 있다. 공소 설립부터 30여 년간 신영숙 회장이 공소를 맡아온 특징이 있다."

부안성당의 신자 자급자족을 위한 간척사업은 신복 공소, 마포 공소, 청호 공소에서 추진되었다.

부안군 보안면 신복공소
부안군 보안면 신복리 새마을(간척지 마을)
부안군 보안면 신복리 새마을 간척지
부안군 변사면 마포공소
부안군 하서면 청호공소

 

 

 

 

 

 

 

조봉오 기자  ibuan1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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