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길

너무 극악스럽다고 그러지 말아줘
나도 고향에선 귀한 아들로 대접받았지
고향을 떠난 것도 내 탓이 아니야
의지할 곳 없는 타향에서
내 한 몸 건사하기 위해선
잠 안 자고 물풀 숲을 헤쳐야 했고
낯선 이들에게 밤새 쫓겨야 했어

허름한 도시나마 내겐 터전이었어
언제 또 쫓겨나야 될지 모르는 막막함 속에서
노숙과 절망과 죽음을 떠올리며
살 길을 찾아 나서는
살아있는 것들의 몸부림을
극악스럽다 탓하며
가치 없는 생명이라 업신여기지만
세상에 가치 없는 생명이 어디에 있으랴

이제 많이 지쳤어
시멘트 수로는 막혀 있고
빠져 나갈 길도 이제 없다는 걸 알아
그러니 이제 내버려둬
가시박 덩쿨 우거진 그늘 밑에
잠시라도 쉬어갈 수 있도록

부안인터넷신문  webmaster@buan114.com

<저작권자 © 부안인터넷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