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숲에서

겨우내 백설로 뒤덮인 산자락마다
봄 되면 쑥국새 피울음을 채우더니
산천에 선혈처럼 꽃망울이 맺히고
황토밭엔 다시 녹두꽃이 피었다

가난한 대나무로 엮은 패랭이로 투구를 대신하고
푸르스름한 죽창을 달빛에 담아
바람 속으로 달려가던 열망이
황사에 덮여버린 하늘에도
봄 산엔 다시 진달래꽃 피었다

화려한 단청 기와집은 여전히 높고
농사짓고도 눈치 보며 연명하던 시절은
아직도 그대로여서
한낮에도 깊은 밤중에도 쉬지 않고
쑥국새는 피울음으로 통문 하는가

입술 깨물며 베어내던 대나무밭에서
시원하게 나부낄 깃발을 위해
대목은 튼실하게 커가고 있는데
패랭이 갓 그늘 하나 만들지 못하고
쑥국새 장단 맞춰 퉁소 가락 하나 뽑아내지 못하는 봄날을
대숲들이 바람 볼 때마다 수군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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