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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범 목요 칼럼] 어머니의 밥상
조인범 전 국회의원 보좌관

저 달은 내속도 모르고 참 맑고도 밝다. 구름마저도 저 밝기를 어쩌지 못하는 눈치다.

그렇게 달빛이 온 들녘에 쏟아진다. 황금빛 나락을 엎어버린 시간들과 이슬을 머금고 선 길가 야생화에, 풀섶을 헤집는 길고양이와 나의 기억에도 내려앉는다.

창틀에 걸터앉은 휘영청 밝은 달이 나를 어서 나오라고 손짓한다. 거실에서 이리저리 뭉개지 말고 나오라 재촉하고 또 재촉한다.

최근까지도 나는 탁자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휑한 거실에서 생활하는 걸 포기했다. 텔레비전과 전축을 친구로 만날 때도 자그마한 나의 책방을 이용했다. 거실 구석구석 어느 한곳까지도 어머니의 손길과 눈길이 머물지 않은 곳이 없어서다.

태어나고 자란 옛집을 헐고 새집을 지어서 입주하는 날 어머니는 날더러 “아범아, 나는 인자 방이 필요없은께 따로 내방을 만들지 말그라.” 하셨다. 이게 뭔 날벼락인가를 맘속으로 읊고 또 되새겼다.

막무가내로 어머니방을 만들어 드렸지만 어머니께서는 하늘나라여행길에 오르실 때까지 거실에서만 생활하셨다. 어머니고집을 꺾을 수 없었던 나는 어머니가 참 야속했다.

거실생활을 고집하신 어머니의 뜻을 알게 된 것은 하늘나라로 가신지 1년하고도 7개월이 지난 최근의 일이다. 그리고 혼자서 목 놓아 울었다. 돌아가셨을 때도 그렇게 꺼억꺼억 소리내어 울지 않은 나였다. 돌아가시고 나서야 어머니마음을 새길 수 있었다는 게 불효막급하다. 불효자는 어떻게 해도 불효자일 뿐이던가.

고등학교입학을 위해 어머니 곁을 떠난 나는 30년을 훌쩍 넘겨서야 어머니 곁으로 돌아왔다. 돌아왔다는 의미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어머니밥상을 날마다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30여 년 동안, 그 어떤 밥상도 어머니밥상과 결코 비교할 수 없었다. 아내의 밥상까지도. 하물며 하숙집밥상과 구내식당밥상, 음식점밥상과 포장마차밥상이나 빵쪼가린들 오죽했겠는가.

얼기설기 막 무쳐낸 상추무침, 오직 소금간만을 했을 뿐인 시금치무침과 고춧가루를 흩뿌려 무쳐낸 콩나물, 간장으로 버무려낸 숙주나물을 뒤집어쓴 쇠고기장조림과 새우액젓으로 밑간을 한 뚝배기 계란찜은 30년 세월에도 그대로인 어머니밥상의 밑반찬이었다. 백발이 성성하도록 늙으셨지만 손맛은 여전하셨다.

오늘 같은 명절에 기억으로만 맛보는 어머니밥상은 어느새 깊디깊은 그리움을 받아낸다.

계란옷을 노랗게 입은 두툼한 명태전과 손가락마디 크기로 싹둑싹둑 썬 쇠고기가 듬뿍 들어간 들깨탕, 멸치로 우려낸 시원한 쇠고기무국은 내가 제일 좋아했던 어머니밥상이었음을.

어디 그뿐이던가. 밥사발이 비어갈 때쯤이면 늘 물으셨다. “밥도 더 있고 국도 더 있는디 더 먹을랑가?” 단 한 번도 거르지 않은 밥상머리 물음이셨다.

아~ 어머니 어머니요...!

요번 추석이 지나고 내년 추석쯤에 내 입맛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 설령 모든 것이 변한다 하더라도 어머니밥상에 차려진 밑반찬을 기억하던 내 입맛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변한 입맛 따라 내가 변해서 어머니밥상을 영원히 잃어버릴까봐 두렵다.

이제 돌아보니 어머니밥상은 내게 늘 보약이었다. 꿈속에서라도 잘 차려진 어머니밥상을 한 번만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정말로 좋겠다.

밥상에 올라 온 어머니손맛을 더욱더 생각나게 만드는 추석달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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