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범 전 국회의원 보좌관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린다는 것은 여러모로 유쾌한 일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으니 그 강산은 어떻게 얼마나 변했을까. 기억들 속에 행여 상흔이 있다한들 어디 그게 상흔으로 남아있겠는가. 다시금 돌아가고픈 기억들로 가득 들어차 있음을 감사할 일이다. 몸으로 부대끼며 서로가 스치고 인연을 쌓는 꿈들로 가득했던 시간이었으니. 

“시방 벤또(辨當 도시락) 검사를 헌당께 책상에다 올려놓더라고” 

교무실을 다녀온 급장(반장) 한마디에 쥐죽은 듯 조용하던 교실은 갑자기 솥뚜껑 여닫는 소리처럼 둔탁한 쇳소리로 가득했다. 볼멘 저항의 소리이기도 했다. 3반 담임 선생님과 낯선 사람이 함께 들어오시고 선생님의 지엄하신 한마디가 허공을 갈랐다.  

“자 도시락 뚜껑을 열고” 

휘 돌아보시더니 곧이어 추상같은 말씀을 우리들 면전에 날렸다. 

“도시락을 거꾸로 뒤집어 엎어놓는다.” 

“에고 뭐시여 이 건 아닌디 이건 아니당께”  

여기저기서 웅성웅성 곡소리가 들려왔다. 

정기적인 도시락 검사를 하는 날이 아니어서 대부분 혼식(混食 쌀밥만은 절대로 안 되고 잡곡과 반드시 섞어야 한다는 쌀을 절식하자는 혼식장려정책)아닌 쌀밥도시락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하숙집 쥔장의 정 깊은 배려였지만 날벼락이었다. 

며칠도 지나지 않아 교장선생님께서는 쫓겨나듯이 다른 학교로 발령이 나서 떠나셨다. 혼식장려정책을 따르지 않았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군부독재정부 시절에 벌어진 지금은 상상도 못하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다. 얼마나 충격이 컸을까. 얼마나 미안함이 컸을까. 지금까지도 그날의 기억이 너무도 선명하다. 

절대적으로 사람은 많았고 쌀은 부족해서 생긴 일이었다. 이를 뒷받침하는 산아제한(産兒制限)과 혼식장려(混食獎勵)는 강제적으로 시행한 대표적인 정부정책 중의 하나였다. 예로부터 사람은 자기 먹을 걸 다 가지고 태어난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르신들 말씀이 하나도 틀린 게 없었는데 출생을 강제로 가로막은 정책적 오류가 오늘날 대한민국의 가장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점을 보면 한 치 앞도 못 본다는 말을 실감한다. 

출생률(출산보다는 출생으로 표현하는 게 더 사람답고 주체적이다)을 높이기 위해서 지난 2006년 이래 정부와 지자체는 200조원이 넘는 세금을 쓰고도 합계출생률은 0.8명대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국가는 물론 세계 최하위에 머무르고 있다. 급기야 지난해 대한민국 인구가 사상 처음으로 줄었다. 출생자가 27만 명대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해 사망자(30만 명)를 밑돌았다(인구데드크로스). 반대로 고령화 속도는 이미 초고령사회(노인비율 20%)에 진입한 일본보다 더 빠르다. 저출생·고령화는 세대갈등 차원을 넘어 이미 미래사회 위기를 불러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이를 멈추게 하는 아니 최소한 더디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바로 출생과 고령화에 대한 대전환의 인식과 대책을 내어놓아야 한다. 지금까지의 인구정책은 실패했고, 저출생 원인규명부터 틀렸다고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는 조영태 교수는 그의 저서 <정해진 미래>에서 단언했다. 맞는 말이다. 지금까지 200조원이 넘는 재정을 쏟아 붓고도 인구데드크로스를 막지 못한 게 그 근거다. 

간과해서는 아니 될 것은 인구정책은 전적으로 국가사무라는 점이다. 복합적 요인이 중첩되어 나타나는 인구감소문제는 국가사무로 해결해야 한다. 앞서 조영태 교수는 저출생의 문제를 “인구밀도가 높아 경쟁이 치열해지면 인간의 생존 본능이 재생산(출생) 본능을 앞서게 된다”면서 저출생 현상은 복지가 부족한 탓이 아니라, 젊은 세대가 고밀도 경쟁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사회적 진화로 설명했다. 

사정이 이러한데 어떻게 지자체간 현금지원정책으로 인구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한 때는 전국 최고의 출생률을 기록한 전남 해남군의 인구정책이 이미 실패했다고 진단한 게 이를 증명한다. 지자체는 인구정책을 자체해결하려 하지 말고 끊임없이 국가에 요구해야 한다. 전적으로 국가사무로 해결하라고. 그 다음에 지자체가 할 일을 찾아 보태서 시너지를 내면 된다. 

우리의 삶터 부안군은 어떤가. 인구감소문제를 해결할 뾰족한 방책이 있는가. 52038! 부안군 우편번호가 아니다. 지난 1월말 기준 부안군 총인구이다. 주소이전과 귀농귀촌으로 대표되는 인구 늘리기를 지속적으로 실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지난 10여 년간 8,000여명이 감소했다(2011년1월말 기준 60,033명, 2021년1월말 기준 52,038명). 끝없이 추락하고 있고 특단의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를 멈추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선 몇 가지만 들여다보자.  

첫째, 저출생과 인구유출의 원인규명을 새롭고도 확실하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한 부안군민의 총의를 결집시켜서 대안을 모색해야 하고 이에 필요한 행정력을 선택 집중하면 된다. 각 지자체가 천편일률적으로 시행하는 제도적 모방으로부터 과감히 벗어날 것이 요구된다. 출생에 따른 현급지급과 귀농귀촌이 바로 그것이다. 지자체간 상대적인 우려가 커가고 있다. 출생자녀수에 맞춘 현금지원은 해결책이 아니란 게 이미 드러났고 부안군은 그럴만한 재원도 없다. 출생을 복지문제로 인식하는 현금지급이야말로 출생률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보다는 인구감소문제, 즉 출생률저하를 사회적 제반 현상의 복합체로 인식하고 젊은 세대가 공감하는 정책적 연대를 추구한다면 되레 해결책은 쉽게 도출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출산 후에 겪게 되는 엄마로서의 ‘나’와 일자리를 찾는 ‘나’와의 괴리를 좁힐 수 있는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지자체 부안군의 책임성과도 결부된다. 귀농귀촌도 마찬가지다. 

둘째, 인구정책을 수립할 때 지역적 정치논리를 과감히 배격해야 한다. 

인구감소로 지방소멸의 근거지가 되는 지역이 속출하는데도 여전한 행정구역으로 건재한 것은 지방백년대계보다 정치의 시각으로 지방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부안군을 살리는 정책결정에서 정치의 시각을 과감히 털어내야 한다. 이 같은 기저에서 부안군이 새만금권역통합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고, 새만금권역통합을 부안군 인구감소문제를 재인식하는 동인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인구감소를 멈출 수 있는 광역행정을 실현할 지역통합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이다. 

더 이상 쇠락하지 않기 위해서도 메가시티광역화로 가야 함을 수도권이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구유출이 심각한 전북도의 우물 안 개구리를 벗지 못하는 자체적 광역화 구상은 선뜻 이해가 안 간다. 당연히 부안군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메가시티광역화지정에서 실기한 전북도의 책임회피성 독자노선과 전주시의 특례시 지정과 같은 이기적인 정책추구는 청산되어야 한다. 전북의 다른 시군의 추락을 막기 위해서도 배척해야 마땅한 참 어이없는 지방정책이다.    

셋째, 부안군근농인재육성재단을 혁신하여 새로운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근농인재육성재단의 누적자산이 현재 165억 원을 상회한다. 장학사업이 주를 이루는데 이를 혁신하여 인구유입정책의 주요 동인으로 전환시킬 필요가 있다. 장학사업은 당연히 부속사업으로 딸려오니 혁신에 나서는 걸 주춤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더 나아가 이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서 재원의 확충방안을 근본적으로 혁신하여 규모를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재원의 확충방안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인데 우선적으로 부안군 소유 자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당연히 부안군조례제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끝으로 일과 가정의 양립, 육아·출산휴직, 보육·출산수당 등으로 대표되는 유럽식 저출산 복지대책을 근본적으로 쇄신하는 정책수립이 이뤄져야 한다. 

출생에 현금지급을 우선하는 정책을 탈피해야 새로운 길이 열린다. 출생을 앞둔 젊은 청년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면 반드시 해결책이 나오리라 확신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복지정책을 ‘임신출생에서 교육까지’라는 인구증대정책으로 대전환하여 임산부와 출생자에 대하여는 부안군이 끝까지 책임지고 조력에 나서야 한다. 

고밀도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대안도 먹히기 쉽지 않을 것이다. ‘서울로 서울로’를 외치는 우리네 인식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즉 고밀도 경쟁사회로의 진입을 털어내지 않고서는 인구감소문제의 해결도 요원할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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