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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국유 임야 누가누가 차지했나?

고려-조선시대에 나라에서는 부안 황장봉산黃腸封山으로 지켜왔다.

그러나 나라가 망하자 기다렸다는 듯 조선총독부는 변산국유림 9590ha를 일본인 高取九郞에게 144,000엔에 팔아버렸다. 1927년 12월 13일이다.

1938년 조선총독부는 국유 임야 부안 변산 마포리 353ha를 백00에게 양여讓與 하였다. 조선총독부 관보에는 매입 대금에 관한 내용은 없었다.

국가기록원에 자료에 의하면, "1911년 공포된 삼림령 관련 조항에 따라 국유림을 대부 받은 자가 그 대부임야에서 계약 시에 작성한 조림 계획서대로 조림을 시행, 성공한 경우에 그 소유권을 양여받을 수 있다" 이것을 성공양여成功讓與라고 한다.

그는 조선총독부 지침에 따라 10년 동안 조림을 실천했고 그 댓가로 성공양여를 받았다. 일제강점기 백00의 행적은 아래와 같다.

▷1931년 11월 산내면 마포리 산86-1, 산87, 산97, 산99, 산107, 산115-3 총 353町 造林 

▷소화6년~소화13년까지(7년간) 임야대부허가

▷1932년 9월 산내면 마포리 산86-1, 산87, 산97, 산99, 산107, 산115-3 총 353町 林野借地權양도허가(양도인 서울 백00, 양수인 익산 靑田竹治외 1명)

▷1937년 10월 산내면 마포리 산86-1, 산87, 산97, 산99, 산107, 산115-3 총 353町 林野借地權양도허가(양도인 익산 靑田竹治, 양수인 익산 백00)

▷1938년 7월 산내면 마포리 산86-1, 산87, 산97, 산99, 산107, 산115-3 총 353町 임야讓與허가, 被許可人 익산 백00

그리고, 1922년 2월 산내면 운산리, 마포리 간석지干潟地 50町 1925년까지 貸付허가 받았으며, 1930년에는 산내면 운산리, 마포리 15만평을 매립했다. 그리고 1927년 11월 전북기업주식회사 익산군에 설립(백00, 靑田竹治) 했다.

한편, 일본인 高取九郞에게 매각된 변산국유림 9590ha는 해방 후 국가에 귀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제강점기 국유 임야 부안군 산내면 마포리 353ha를 양여 받은 백00의 임야는 해방 후 어떻게 되었을까?(계속)

1938년 변산 마포리 353ha 양여(출처:조선총독부관보 캡처, 한국사데이터베이스)
1930년 변산 마포리, 운산리 매립허가(출처:조선총독부관보 캡처, 한국사데이터베이스)
1922년 변산 운산리, 마포리 대부허가(출처:조선총독부관보 캡처,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조봉오 기자  ibuan1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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