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범 전 국회의원 보좌관

대한(大韓)인 우리에게 백두산은 명(命)줄이다. 백두대간이라 하지 않는가. 오매불망(寤寐不忘) 부지불식간에 그리 인식하는 것은 우리가 이 땅, 대한민국에 나서 자라고 교육받고 밥벌어먹고 사는 동일체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한라에서 백두까지를 외치던 시절도 있었다. 그만치 백두산은 우리네 정신세계에 들어와 한몸이 되었다. 내 의식도 또한 그렇다.

수십여 국가를 다녔지만 정작 그런 백두산을 나는 가보지 못했다. 참으로 민망하고 아쉽다.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는 그곳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다. 무서운 게 사람의 발길이라던가. 북한산 자락을 누빌 때 동행했던 산악인이 그리 말했다. 그날따라 북한산 능선에 사람꽃이 피었다. 일 년에 한 번뿐인 이뿐 꽃들의 파티는 묻히고 말았다. 사람 손 타는 것을 모질게 견뎌내는 그들이 애잔해서 혼났다. 어디 북한산 꽃들만 그랬을까. 다소 불편하더라도 산길은 원래 모습 그대로가 더 좋다. 느림이 던져주는 상상의 아름다움을 깨뜨려서는 아니 된다.

국립공원 변산반도가 품고 있는 내변산(內邊山)과 외변산(外邊山)이 내겐 그런 곳이다. 내변산이 들키고 싶지 않은 은밀한 속살이라면, 외변산은 뻐기고 싶을 만치 예쁜 얼굴이다. 내변산이 숨소리조차 숨기면서 더듬어 가야 할 곳이라면, 외변산은 ‘나 예쁘다’라고 큰소리쳐도 대항할 수 없는 치명적인 아름다움이 바다로까지 뻗친 곳이다. 그런 내변산과 외변산이 요사이 덕지덕지 분칠을 하고 있다. 내가 봐도 좀 어이가 없고 씁쓸하다. 아니 못내 서글프다.

나는 지난 십 수 년을 내변산과 외변산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살았다. 아니 자랑질도 수없이 해댔다. 변산에는 자연이 탐할 정도의 빼어남이 있다. 내 자랑질의 원인이 바로 자연마저 탐하는 그 빼어남이다.

지난 주말에도 나는 내변산자락을 누비고 왔다. '눈깜짝할새'는 아니지만 쏜살같이 더듬고 왔다. 내변산 속살 위 곳곳으로 뻗어나간 산길은 언제 걸어도 좋고 머물러도 좋다. 좀 더 빨리 걷는다 해서 그 빼어남을 놓칠 수 없는 산길이고 언제 들었는지도 모르게 숨어있는 햇볕을 찾기에 딱 좋은 산길이다. 해발 145미터 남짓한 곳에 울창한 숲길로 쭉 이어진 산길이니 그렇지 않겠는가. 직소폭포의 물살을 떠받쳐 이고 있는 숲속 호수는 덤이지만 그 빼어남은 상상 그 이상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그래선지 나는 속삭임을 피할 수 없는 내변산을 더 좋아한다. 국가지질공원인 채석강과 해안마실길이 있는 외변산보다 봉래구곡, 그 중에서도 직소폭포가 쏟아내는 생명수가 넘치는 내변산을 나는 더 좋아한다. 늘상 다니는지라 조금만 변해도 금새 알아차린다. 그런데 이상했다. 흙냄새 물씬 들춰내던 산길이 없어졌다(?).

국립공원 변산반도! 부안군 상수원 보호구역!인 이곳이 변모해가고 있다. 내변산 속살에 느닷없이 수입산 멍석말이가 깔렸다. 덕지덕지 분칠을 할 요령인 게다. 흙길을 친구삼아 그들과 발맞추고 싶어 오가건만 멍석말이로 덮어버렸다. 그것도 수입산 바나나줄기가 원재료인 멍석말이다. 오가는 사람들에겐 나뭇잎 하나 꺾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국립공원, 오가는 사람들은 땀방울(?)마저 쏟아내서는 아니 되는 상수원 보호구역에 왜 저리 분칠을 해대고 있을까? 참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내 친구 '흙길'은 이제 숨통마저 막힌 건 아닌지 너무도 답답했다. 편리함을 쫓아가는 군상들의 단상인지 알 수 없다. 아님 다른 편익을 쫓아갔는지도. 아니면 탁상행정의 모범(?)을 보여 준 것은 아닌지 참으로 대견(?)했다. 일부에선 벌써부터 멍석말이가 낡아 찢겨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새로이 덮는 구간은 늘어만 간다.

왜 그럴까? 운동화에 슬리퍼에 구두에 등산화에 흙먼지 내려앉도록 그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었을까.

사람손이 닿아서 더 좋은 꼴을 보고 싶은데 저 멍석말이는 아니다. 국립공원은 개발행위가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 화재와 재난으로부터 사람과 동식물 보호를 위해서 꼭 필요할 뿐만 아니라, 국립공원지역 보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소방도로마저 개설하는 걸 극히 꺼려한다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왜 저런 멍석말이는 앞장서서 덕지덕지 깔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법이 어떻고 행정이 어떻고 편의시설이 어떻고 더 이상 따지고 들지 말자.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사람세상의 숨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온통 콘크리트 덩어리들로 판치는 세상, 포장도로가 최상인양 길의 숨통을 끊어놓는 세상, 이해관계로 뒤범벅되어 하지 않아야 더 좋은 경관들을 망치는 세상, 온 생명체들과 공생공락(共生共樂)할 사람들의 준비된 마음을 후려치는 세상을 이젠 한 번쯤 돌아볼 때이기 때문이다.

국립공원 변산에도 수입산이 판치는 세상이 되어간다. 암벽에 쇠말뚝을 박아 그 위로 구조물을 설치하고, 흙길에는 멍석말이를 덕지덕지 붙이는데 이것들이 국적불명이 되어간다는 게 끔찍하다. 걷기 좀 불편하면 어떤가. 그렇다고 쇠말뚝이, 멍석말이가 꼭 편한 길은 아닐진대.

국립공원관리공단이여, 변산 속살이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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